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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5. 사법농단(2018년 6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이 역대 최강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된 것은 사법농단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이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줄줄이 수사 대상이 되고 수감되기도 했지만, 사법부의 대법원장은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다. 검찰주의자로 불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는 행운처럼 사법농단 수사가 찾아왔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법원 내에서 사법농단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사법농단 의혹은 몇 차례 문제제기가 됐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유지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사법농단 의혹의 큰 줄기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자신의 숙원 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뒷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법원행정처가 김기춘 비서실장 등의 요청을 받고 판결을 미룬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 문제 법관을 블랙리스트 형식으로 관리하고, 주요 재판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부당하게 관여한 사례 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를 먼저 실시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 불가피론이 끊이지 않았고, 2018년 5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전직 사법부 핵심들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수사를 앞두고 법원 내에서는 우려가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가깝지 않고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 행위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 판사들 가운데서도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많았다.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길 경우 과잉수사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원은 영장 기각 등을 통해 검찰 수사를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기관이다. 검찰은 영장이 기각됐을 경우 법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압수수색 영장이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법원을 비난하면서 법원을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 검사들은 늘 있었다. 사법농단 수사는 법원을 싫어하던 검사들이 노리고 있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예견됐던 논란이 벌어졌다. 검찰은 앞선 대법원의 진상조사에 구애받지 않고 수사 범위를 넓혔다. 법원 진상조사에서 조사 대상이 되지 않았던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수사 대상이 됐다. 법조인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유해용에 대한 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완전 별건”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청와대나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윤석열 지검장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던 시기였지만, 이 인사는 수사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유 전 재판관도 1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자신에 대한 수사를 별건수사, 표적수사, 먼지떨이 수사로 규정했다.     

 대법원에는 행정과 재판 영역이 함께 있다. 행정은 법원행정처가 담당하고 재판은 대법관과 그에 소속된 재판연구관들이 담당하게 된다. 법원이 자체 진상조사에서 밝힌 것은 법원행정처의 문제였다. 인사, 예산, 정책 등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 협조를 얻기 위해 청와대에서 관심 있는 사건의 재판에 관여해 일선 재판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게 사법농단 사건의 요지다. 그런데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 관련해서 처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인물은 법원행정처 소속이 아니고 대법원 진상보고서에 등장하지 않는 유해용 전 재판관이었다. 유 전 재판관의 주요 혐의는 증거인멸이었다. 윤석열 체제 검찰에서 단골손님인 증거인멸이 이 사건에서도 등장한다. 유 전 재판관이 재직 시절 사용하던 여러 기밀문서들을 대법원 사직 시 반출했고, 이를 인멸했다는 것이었다. 본인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은 법체계 상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은 유 전 재판관에 대해 절도,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영장은 기각됐고, 유 전 재판관은 불구속 기소된다.     

 유 전 재판관의 혐의에는 직접적으로 사법농단과 관련돼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으로 알려진 김영재 씨의 부인 박채윤 씨의 특허소송 상고심과 관련한 재판 쟁점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다른 재판연구관에게 작성하게 하고, 이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청와대에 넘겼다는 것이었다. 유 전 재판관은 1심 재판에서 "대법원 특허사건의 절차적 정보를 담은 사안 요약 문건 하나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혹독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사법농단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재판관은 사법농단 사건 검찰 수사 초기, 가장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에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언론에서 그의 이름이 며칠 간 가장 중요하게 오르내렸다. 유 전 재판관은 2020년 1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유 전 재판관은 청와대에 문서를 전달할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른 고위 법관들과 함께 청와대와의 뒷거래를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기록물 유출에 대해서도 유 전 재판관이 반출·파기한 문서를 공공기록물로 인정할 수 없고, 무단 유출하겠다는 의도도 없다고 봤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업무상 비밀 누설 혐의 수사를 위해 처음으로 유 전 재판관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검찰이 보기에 문제되는 문건들이 유 전 재판관 컴퓨터 화면에 보였고 이를 압수수색을 나간 수사관들이 휴대전화 사진 촬영하면서 별건 수사가 시작됐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모두 영장에 기재된 압수수색 범위를 벗어나는 증거 수집 행위로 위법한 증거 수집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 전 재판관은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돼 있다.     

 대법원 진상조사 당시 주요 인물이 아니었던 유 전 재판관은 왜 사건 초기 검찰의 주요 타깃이 됐을까? 일단 유 전 재판관의 주요 혐의가 증거인멸이었다. 앞서 변창훈 검사의 비극으로 이어진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후술할 삼성바이로직스(삼바) 관련 수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에서도 증거인멸은 사건의 중요한 축 중 하나다. 증거인멸은 국가 공권력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형사 당사자 입장에서는 방어권 행사라고도 주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률은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 차원에서 본인 사건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체제 서울중앙지검은 증거인멸 행위를 그 전 어떤 검찰보다 강하게 처벌했다. 걸리는 사람은 구속영장 청구를 피해가지 못했다. 과거보다 검찰의 힘이 강했다는 하나의 사례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전에는 검찰이 피의자, 참고인들의 증거인멸 행위에 분노하면서 이를 처벌하는 경우는 소수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는 많은 사건에서 증거인멸의 구체적 정황이 언론을 통해 다 공개된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유해용 전 재판관 사건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이후 증거인멸이 행해진 정황과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유 전 재판관과 함께 일했던 경력이 있는 판사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유 전 재판관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매체 성향을 불문하고 유 전 재판관에게 불리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앞으로 나올 삼바의 컴퓨터 공장 바닥 은폐, 조국 사건 당시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자 증거 인멸 행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등에서도 증거인멸과 관련된 내용이 자세히 언론에 등장했다. 보도된 내용의 구체성을 봤을 때 검찰이 알려주지 않은 이상 나올 수 없는 기사들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은 피의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검찰에는 수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정권과 대법원의 예상을 벗어나 확대됐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됐다. 검찰 수사에 앞서 대법원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던 안철상 대법관은 검찰 수사가 5개월을 넘어서자 “명의는 환부를 정확하게 지적해서 단기간 내에 수술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것이 명의라 할 수 있다”며 “아무리 병소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수사에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김진태 전 총장의 ‘외과수술 수사’와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한 수사는 범위를 계속 확대해 나갔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외과수술 반대는 암수술이다. 일단 수사의 단서를 잡아서 환자의 배를 갈라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보는 것이다. 이게 문제 같기도 하고 저게 문제 같기도 하다. 이곳저곳 살펴본다. 그러다 보니 예상했던 수술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검찰은 사건을 2018년 6월 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한 뒤 7개월 만인 2019년 3월 핵심 연루 법관들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예상치 못한 유해용 전 재판관이 중심인물로 등장한 것이 사건이 장기화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검찰은 다른 얘기를 했다. 사건 초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자택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양 전 원장 거주지 등 압수수색 영장 기각과 관련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것도 이례적이다. 관련 기사의 내용에 검찰 관계자의 멘트가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린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 이후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이 생기기 전에도 압수수색 영장 발부와 기각에 대한 내용은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기자들에게 이를 알려 여론전을 펼친 역사가 있다. 역시 이 사건에서도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에서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등장했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일 수도 있고, 검찰의 지나친 영장 청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법농단 사건은 재판 결과를 두고도 논쟁이 반복됐었다. 부적절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범죄 행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기소된 법관들의 면면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고위직 인사들은 당연히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기소된 법관들 중 대법원 근무 판사,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을 제외하고 행정업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3명이었다. 유해용 전 재판과과 성창호, 조의연 부장판사였다. 성창호, 조의연 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2016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영장 전담 판사 보직을 맡았다. 영장 전담 판사는 검찰을 견제하는 1차 문지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검찰이 청구하는 통신 영장, 계좌추적 영장, 압수수색 영장, 구속영장 등을 심사하기 때문이다. 영장 전담 판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검찰 수사는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사들, 특히 특수부 검사들에게 자주 성토의 대상이 된다.

 영장 전담 판사 2명이 기소 대상이 된 것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관이 비리에 연루되자 관련 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행정처에서 ‘블랙리스트’로 불렸던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했던 부장판사 급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모두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행위의 경중과 지위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누가 기소 대상이 돼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검찰의 판단은 사법농단의 본류로 보기 어려운 사건 연루자들의 기소였다. 사법농단의 본류는 청와대와 대법원의 뒷거래였다. 두 영장 전담판사는 사법부가 판사 연루 사건을 관리하기 위해 벌인 일에 연루됐다. 검찰 견제를 1선에서 담당하는 영장 전담 판사 경력이 검찰의 판단에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원 내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해용 전 재판관도 지위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됐다는 시각이 있다. 유 전 재판관은 차관급으로 대법원에서도 고위급에 속했다. 검찰 입장에서 수없이 마음에 안 드는 대법원의 판결들을 내놓았던 당사자 중 한 명이다. 재판연구관은 대법관들의 판결 초안을 쓰는 사람들이고, 수석재판연구관은 수많은 판결문을 검토한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검찰은 모두 14명을 기소했다. 66명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비위 통보를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대법원 소속이었던 6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을 선별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검찰의 기소편의주의가 작용했다. 누구를 기소하고 말지는 검찰만이 정할 수 있고, 그것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합법적 행위다.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 기소 대상자를 선별하면서 “단순히 죄가 된다고 기소범위를 정하면 기소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어 기소를 한정했다”며 “범죄혐의 중대성, 가담 정도, 실제 수행한 역할, 지시에 따른 수동적 이행인지 적극적 가담인지 여부, 그 행위에 대한 불법성을 명확히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진상규명에 대해서 기여한 정도, 현행법상 범죄 구성 여부 등 현실적인 공소유지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모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대법원 블랙리스트 관리 판사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 구분하기가 잘 어렵다. 하급심 판결에서는 법원행정처 일부 인사들의 유죄를 인정했을 뿐 일선 법원 근무자들의 혐의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대법원 판결이 나오더라도 검찰은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행위를 문제 삼을지, 누구를 수사 대상으로 할지, 그 중 누구를 재판에 부칠지에 대한 검찰의 판단도 명쾌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유해용 전 재판관 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사건은 1심 결론은 내는 데만도 1년이 넘게 걸리고 있다. 같이 기소됐던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 전 부장판사 등은 대법원 결론 전이지만 하급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다만 하급심 판결에서도 일부 무죄를 받은 사람들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1심에서 재판부는 “재판 관여 행위는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해 징계사유 등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다만 임 전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리 상 맞지 않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인데 재판 관여 업무 자체가 직무가 아니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법체계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권은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권한 안에 있는 일을 잘못 사용하면 처벌이 되는데 법령 상 자신의 권한을 넘어선 행위를 하는 것은 처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향후 법률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상정해 보완이 필요하다.     

 여담이 될 수 있지만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례는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임 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직 당시 세월호 사건 때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 씨와 같이 있었다는 취지로 기사를 쓴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에 개입했다.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였던 임 부장판사는 1심 재판장이었던 이동근 부장판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판결문 수정을 시도했다. 이 부장판사는 판결문 초안을 임 부장판사에게 보냈고, 임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첨삭했다. 법관 재판권을 침해하는 반 헌법적 행위를 임 부장판사가 저지른 이유는 청와대의 관심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임 부장판사는 무죄로 결론 난 이 사건에서 무죄 판단을 유지하되 허위사실은 명백하다는 점을 판결문에 명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가토 전 지국장에게 망신을 주라고 했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이 지시에 따라 1심 판결문을 읽는 3시간 내내 가토 전 지국장을 서 있으라고 했다. 도저히 법리 상 유죄를 쓸 수는 없으니 망신이라도 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 기소 단계부터 검찰을 압박했다고 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향 후배였던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전화까지 걸었다고 한다. 김 총장은 저항했지만, 검찰은 결국 가토 전 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게 된다.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는 사실이라는 근거가 거의 없었지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형사 기소는 무리한 일이었다. 청와대의 공작은 기소 단계에서 끝나지 않았다.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법원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이게 바로 독립된 사법부와 검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거 권력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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