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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1. 복귀와 재편(2017년 5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잘 알려진 바대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다 박근혜 정부의 눈 밖에 났다. 윤 전 총장은 그 이후 검찰의 한직인 고검 검사를 떠돌게 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윤 전 총장은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가 불편해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어 갔다. 과거 정권 초기에 정권의 뜻대로 움직였던 검찰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박근혜 정권도 반격을 가했다. 윤석열 팀장을 임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한 언론에 보도됐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작업은 국정원이 주도해 특정 언론이 보도했다. 채 총장은 사건 초기 관련 사실을 부인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사퇴한다. 이로써 댓글 수사팀도 힘을 잃었다. 윤석열 팀장이 하려는 수사는 윗선에 막히기 시작했고, 윗사람들과의 갈등 끝에 윤 팀장은 직무배제됐다. 2013년 10월이었다. 팀장에서 직무배제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윤석열 전 팀장은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갈등 상황을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여과 없이 말했다. 당시 검찰 고위직들은 윤석열 전 팀장의 국정감사장 출석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윤 전 팀장은 이를 무시하고 국정감사장에 나타나 스타 검사가 됐다. 이 장면은 검사 윤석열의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직업 공무원인 검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민감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이때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자격으로 출석해서도 거침없는 답변을 이어갔다. 윤 검사는 2013년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2020년에는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국정감사장에서 말했다.


 서울대 법학과 79학번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학 시절부터 반골 기질이 다분하고 배짱이 좋았다고 한다. 말도 거침없이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검사가 된 이후에도 유지된다. 검사 윤석열이 보여준 기질은 좋게 보면 의협심이 큰 것이지만, 나쁘게 보기 시작하면 독선적이고 여론을 활용하는 검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치권의 검사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을 오갔다. 현 여권이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에는 윤석열을 의로운 검사라고 했지만, 이제는 야권이 그러한 평가를 한다. 야권은 여당 시절 항명한 검사라고 비판했고, 여권은 지금 윤석열이 변했다고 한다. 정치적 입장을 제거하고 보면 윤 전 총장의 기질은 변함이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와신상담의 시절을 거친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검사는 한직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퇴직하지만, 윤 전 총장은 끝까지 버텼다. 예기치 못하게 권토중래의 기회가 빨리 왔다.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실이 밝혔지면서, 박근혜 정권이 조기에 몰락하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이 출범하고, 윤 전 총장은 수사팀장으로 발탁됐다. 박영수 특검과 윤 전 총장은 특수통 라인으로 이어진다. 박 특검과 윤 전 총장은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론스타 사건) 수사팀에 같이 있었다. 박 특검은 당시 중수부장이었고, 윤 전 총장은 특수통 라인의 촉망받은 소장 검사였다. 윤 전 총장은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 1·2과장을 모두 맡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가 없어지지 않았고 윤 전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정권과 틀어지지 않았으면 중수부장에도 올랐을 것이다. 박 특검은 특검이 되자마자 윤석열 검사를 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사실상 윤석열의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특검팀의 수사는 절대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수사가 끝날 때쯤 윤석열 수사팀장은 국민검사 반열에 오른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기능을 가진 검찰청 중 전국 최대로 주요 사건을 다룬다. 2017년 5월 19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발표는 다소 특이했다.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발표했는데 다른 인사 발표와 달리 미괄식이었다. 보통의 인사 발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씨를 임명했습니다. 윤석열 씨는 오랜 기간 검찰에 있으면서 능력을 보였고~~”라는 식으로 발표자가 말한다. 그런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발표는 배경과 이유에 대한 설명이 먼저 있었다. 윤 수석은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고검장 급으로 격상된 이후 정치적 사건 수사에 있어 총장,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계속되어 온 점을 고려하여 종래와 같이 검사장급으로 환원시켰고,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 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하였습니다”라며 “승진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윤석열 현 대전고검 검사”라고 발표했다. 발표 순서가 바뀐 것은 그만큼 발표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윤석열 검사가 중용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았지만, 이렇게 빨리 중요한 자리에 올릴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낮추는 행정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윤석열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전임자는 이영렬 전 검사장으로 윤 총장과 사법시험 기수가 5년 차이가 났다. 검찰 관행으로는 쉽게 있을 수 없는 인사였다. 또 청와대가 직접 일선 검사장인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발표하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활하기 전 문재인 대통령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문 대통령 주변에서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법무부 장관)이 사법연수원 동기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전 총장은 고검 검사로 지방을 떠돌던 시절에도 민주당 인사들과 접촉을 어느 정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 실세로 불렸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윤 전 총장에게 출마를 권유했던 것은 윤석열 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또 대구고검 검사를 할 때 당시 대구 지역구를 둔 김부겸 전 의원(현 국무총리)과도 접촉을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한 차례 조우한 정도만 외부에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대구를 방문했을 때 윤 전 총장이 동대구역 플랫폼에서 문 대통령에게 “윤석열입니다”라고 인사한 정도가 알려진 사실이다. 문 대통령과의 직접 인연은 알려진 게 별로 없지만, 문 대통령 본인 또는 핵심적 주변 사람이 윤 전 총장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중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윤 전 총장이 문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서울중앙지검장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윤 전 총장과 함께 국정원 수사팀을 함께 했던 박형철 전 검사는 윤 전 총장보다 앞서 5월 12일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인수위원회가 없었던 청와대 인사에서 손꼽히게 빠른 인사였다. 거의 선거 때부터 낙점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을 봤을 때 문 대통령이 자신이 낙선했던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팀으로 수고했던 인사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진용은 생각보다 빨리 재편됐다. 청와대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이 전면에 나섰고, 검찰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으로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수사한 박형철 전 검사가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던 김수남 검찰총장은 바로 물러났다. 준비가 된 듯이 법부무와 검찰 라인이 정리됐다. 법무부 장관은 당초 안경환 서울대 교수가 장관으로 낙점 받았지만, 검증 문턱에서 탈락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교수 출신으로 진보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박상기 장관이 취임했다.

 정권 초기 검찰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중심으로 돌아갔다. 총장이 8월까지 약 석 달 간 공석이었다.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은 문무일 검찰총장이었다. 문 총장의 임명은 인재 풀의 한계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 총장은 검찰개혁을 상징할 만큼의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덜 잘 나가던 호남 출신 고위 검사였다. 검찰총장 자리 특성 상 검찰을 떠난 지 오래 된 인물을 발탁하긴 어려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난한 인물을 택했다는 게 청와대나 여당 내에 대체적인 평가였다.

 검찰개혁을 이끌어갈 주요 인사는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 등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좀 약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상기 장관은 문재인 캠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 아니었고, 인지도도 약했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역시 정권 핵심 인사들과 거리가 가깝지 않았고, 개혁 색채가 강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뒤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권 초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 다른 인사를 기용했지만, 검찰개혁을 이끌어갈 사람으로 두 사람을 내심 염두에 뒀었다는 의미로 들린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문무일 총장보다 더 실세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 윤 지검장은 자신의 측근들을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대거 기용했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누구보다 가까웠던 윤대진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오고, 한동훈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맡는다.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의 2인자이고, 3차장은 특수부 수사를 지휘하는 요직이다. 윤석열, 윤대진 검사는 검찰 내에서 각각 ‘대윤’, ‘소윤’으로 불리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요직으로 이어서 두루 맡았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2019년 검찰총장에 지명됐을 때 윤대진 검사의 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과 가깝게 지내며 골프를 쳤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한동훈 검사는 국정농단 특검에서 윤 지검장과 호흡을 맞췄다.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당시에도 윤석열, 한동훈 검사는 평검사로 중수부에 있었다. 검찰의 주축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검사, 과거 중수부 경력이 있는 검사들로 바뀌었다. 이러한 인사 결과 등을 근거로 검찰을 향한 눈은 대부분 윤석열 지검장에 모두 쏠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조국 수석과 윤석열 지검장은 출신 특성 상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았다. 진보 학자 출신으로 시민단체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던 조 수석과 검찰 내에서 최고 인맥인 특수통의 적자 윤 지검장은 결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을지 모른다. 지금 복기해 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부도 엇박자가 날 요소가 많았다. 나중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에 대해 나타난 조 수석과 검찰 출신 비서관・행정관 간의 인식과 기억 차이는 삶의 궤적 차이로 느껴지기도 한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 부팀장을 하다 좌천되면서 진보 진영 인사들 눈에 들게 된다. 하지만 그 전까지 박 비서관은 ‘특수통’과 함께 검찰의 또 다른 핵심 라인인 ‘공안통’의 최고 유망주였다. 선거범죄의 일종이었던 댓글 사건에서도 특수통인 윤석열 팀장이 무리할까봐 공안통 쪽에서 안전장치로 박 비서관을 부팀장으로 넣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박형철 부팀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공안통 선배들을 멀리 하고 윤석열 팀장의 의견을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고난을 함께 겪었다.

 박형철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초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된 뒤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으로 이인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데려 왔다. 이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왕재산 사건,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 매수 사건 등을 맡았던 적이 있고 통합진보당 해산 태스크포스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 박 비서관 다음으로 검찰 내의 공안통으로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이 변호사는 반부패비서관실 내에서 특별감찰반장을 맡았는데 청와대 입성할 때부터 김앤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기업, 국정농단 연루 기업 변호를 맡았다고 구설이 나왔다. 이 변호사가 사과하는 선에는 청와대는 특별감찰반장 임명을 그대로 밀어 붙였다.

 이질적인 인사들의 결합은 악연으로 끝나고 만다.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에 대해 조국 수석과 박형철 비서관, 이인걸 특별감찰반장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조 수석은 청와대 감찰에서 강제 수사권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 전 부시장이 조사를 거부해  감찰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 전 부시장이 감찰 도중 사표를 내면서 사건이 종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비서관과 이 반장은 유 전 부시장을 검찰 고발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감찰 무마 쪽에 힘을 실어주는 법정 증언을 했다.

 특별감찰반은 나중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 사건도 불거진 곳이다. 이인걸 특별감찰반장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김 전 특감반원은 면접을 보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전 민정수석 때문에 청와대 근무를 그만 두게 됐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고 한다. 김 전 특감반원 감찰반 면접에 합격한 뒤 과거 보수 정부 시절 특별감찰반원들이 하던 무리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면서 문제가 몇 차례 있었다는 게 이 반장의 주장이었다. 김 수사관은 비위 문제로 인해 청와대가 자신을 본래 소속인 검찰로 돌려보내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폭로했다.


 문재인 정부는 유난히 검찰 출신 인사들과의 악연이 많다. 가장 믿었던 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실상 야당 역할을 하다 야권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검사 출신인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이인걸 전 특감반장,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이 정권 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정권과 검찰 간의 갈등을 정리할 소방수로 등장한 검사 출신 신현수 전 민정수석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조기 사퇴했다. 신 전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출신 인사 중 가장 신뢰했던 인물이었다. 여당에서도 금태섭 전 의원, 조응천 의원 등 검사 출신들이 문재인 정부의 주류와 결이 다른 소리를 많이 했다. 검사 출신들이 진보 정부와 궁합이 잘 맞기 어렵고, 진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 인맥이 드물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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