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증거인멸 과잉 수사

by 전환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을 지칭하는 말 중에 '저인망' 수사가 있다.

바다 밑바닥까지 그물을 쳐 물고기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막 잡아들이는 것처럼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인사들을 몽땅 수사한다는 뜻이다. 충분한 내사 없이 수사를 시작했다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의도한 진술이 나올 때까지 관련자들을 모두 불러내는 등의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취임하면서 저인망 수사 행태를 바로 잡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총장이 됐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무차별 저인망식 특수수사를 지양하고 치밀한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신속히 환부만 도려내는 스마트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총장들도 수사 관행을 바꾸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을 했고 실제 개선이 상당히 있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앞서 말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의 외과수술식,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도 이러한 노력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 관행이 완전히 과거로 돌아간 듯한 사건이 있었다.

삼성바이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30대인 대리부터 무려 8명을 증거인멸 혐의로만 구속한 것이다.


증거인멸은 형법상 규정된 범죄 혐의보다는 어떤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자주 등장한다. 바로 법에 정해진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기업을 수사한 검찰이 증거인멸에 단순히 가담한 실무자를 구속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사건 관련자가 유독 많다는 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특징이었다. 삼바 수사뿐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수사 등에서도 주요 인사들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12월부터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했는데 본건과 관련돼 구속된 사장급 이상 삼성 고위 인사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한 명도 없다. 공장 바닥을 뜯고 증거를 감춘 실무자와 일부 임원만 구속된 것이다. 김태한 삼바 사장에게 분식 회계 혐의를 포함시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됐다. 과거로 따지면 미래전략실에서 전문경영인으로는 최고위급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사장은 2019년 6월 검찰에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예상과 달리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범죄 혐의가 완성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결국 분식회계 사건은 현재 온 데 간 데 없는 상태에서 승계 작업 관련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분식회계 사건의 정점으로 취급받던 최고위급 전문경영인들은 불구속됐고, 아마도 이들 또는 이들 바로 사람의 지시에 의해 증거인멸에 가담한 실무자들은 구속되는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과거 '칼잡이' 자처했던 검사들은 범죄에서 가장 큰 책임자만 건드린다는 인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쳇말로 '대빵'만 건드린다는 자존심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인식이 수사 원칙에 맞다. 범죄를 주도하고 지시한 사람에게 총체적 책임을 묻는 것이 맞는 것이지,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실무자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정관계 고위 인사나 기업 고위 관계자가 수사를 받으면서 "내가 다 안고 가겠다"라고 말하는 것도 실무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의미다.


삼바 증거인멸로 구속된 8명의 구체적인 속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직급이 대리부터 초급 임원으로 모두 생업에 종사하면서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능성이 높다. 어떤 행위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라고는 그들의 직급을 봤을 때 보기 어렵다. 검찰 수사에 냉소적인 사람들은 직원들을 구속으로 압박하고 자백을 얻어내려 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수사를 받은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는 구속의 공포가 엄청났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삼성의 최고위급 간부도 아니고 어찌 보면 평범한 직장인은 그들은 검사 앞에서 철저히 을이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모두 삼성이라는 회사의 엽기적인 증거인멸 행위에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 구속된 사람들은 이 일을 계획하거나 지시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사람들 8명을 모조리 구속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부당한 지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한 데 책임을 물어 누군가가 인생의 전성기를 감옥에서 보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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