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서술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사상 처음으로 사법부라는 권력기관을 검찰이 손봤다는 의미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내내 사법부는 내홍에 시달리고, 개혁 작업 진전도 없고, 권위도 크게 실추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을 제외한 다른 권력기관들도 비슷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 외에는 권력기관 대부분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반성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 검찰 수사였다. 박근혜 적폐 수사는 묘하게 검찰의 라이벌 기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탄핵을 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일정 시점 이후에는 재판을 거부하는 것으로 투쟁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을 겪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나라 망신이지만 박 전 대통령이 받은 탄핵이라는 처분과 형사처벌은 그가 한 행위를 봤을 때 당연한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이후에도 또 다른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불법으로 개입한 혐의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는데, 2018년 1월과 2월 혐의가 추가돼 기소된다. 국정원 특활비 36억 5000만 원을 상납받고, 2016년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이른바 비박(비박근혜) 후보를 찍어내기 위한 작업을 총지시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 것이다. 공천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이 확정됐고,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2심까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2심까지 징역 25년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은 징역 32년을 살아야 된다. 남아 있는 재판 절차가 남아 있어 이 형은 조정될 수 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러한 광범위한 수사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직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먼저 공천개입 혐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경찰 수뇌부와 연결이 됐다. 정보경찰들이 비박계 인사들의 동향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경찰청 정보국 차원에서 총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직 치안감(경찰 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계급)이었던 박기호 전 청와대 치안비서관과 정창배 전 경찰청 정보국장에게 2019년 4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곧바로 2016년 총선 당시 경찰청 차장이었던 이철성, 경찰청장 강신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이 중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전직 고위 경찰관들은 모두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검찰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들을 모두 감옥으로 보냈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모두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혐의를 시인한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만 기각됐다. 이병호 전 원장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면서 법정구속됐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경환 전 새누리당 의원도 구속됐다. 이병기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1억 원을 받았는데 검찰은 최 전 의원이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시절 이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예산을 올려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기소했다. 즉 뇌물이었다. 최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최 전 의원은 아마 억울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30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았는데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최 전 의원은 액수가 훨씬 적은 데도 같은 형을 받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뇌물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병기 전 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관행적으로 정권 실세들에게 일종의 통치자금으로 건넸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전 의원에게 돈을 준 이유는 똑같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장이 정권 실세에게 실질적 이득을 얻기 위해 건넨 뇌물로 봤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인사들은 관행적으로 오고 간 돈을 뇌물로 볼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전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엇갈렸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분 기소에 상고하지 않았고, 대법원 판결 없이 재판이 종료됐다. 대법원에서 판단을 했다면 뇌물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는 점도 밝혀 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추가 혐의 수사로 박근혜 정부에서 잘 나갔던 경찰과 국정원 고위 인사들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경찰은 오래 전부터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조직이다. 수사기관으로 수사지휘권 문제, 영장 청구권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자주 터져 나왔다. 경찰에서 검사들을 비리 혐의로 수사하고, 반대로 검찰에서 경찰들을 종종 수사하면서 신경전이 자주 펼쳐졌었다. 과거에도 검찰 수사를 받은 전직 경찰청장들도 많았다.
국정원도 권력기관으로 검찰과 부딪힐 일이 상당히 있는 조직이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로 인해 좌천되고 시련의 시기를 보낸 사람이다. 당시 국정원장은 남재준 전 원장이었다. 국정원 특활비 수사는 변창훈 전 검사의 비극적 선택을 불러왔던 댓글 수사 방해 수사와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남 전 원장은 수사 방해 혐의 조사를 받기 직전 특활비 사건으로 구속되고 댓글 수사 방해로 추가 기소된다. 남 전 원장은 특활비 상납으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 수사 방해 혐의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사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인식됐고, 권력기관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적폐청산 국면이 아니었다면 전직 경찰 수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경찰의 조직적 저항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상당했을 것이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누구도 수사해 보지 못했던 대법원 엘리트 판사들을 건드렸고, 예전처럼 라이벌 권력기관의 전직 수장들도 엄벌에 처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 다른 정권 같았으면 이렇게 견제 관계에 있는 다른 권력기관을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실질적으로 검찰을 통제했던 최고 권력이 검찰을 견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