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by 전환

문재인 정부 들어서 검찰 수사하면 가장 화두가 됐던 말 중의 하나가 '살아 있는 권력 수사'일 것이다. 검찰 수사가 전 정권 인사, 즉 죽은 권력에만 집중되는 것을 꼬집어 검찰의 진정한 수사권 독립은 살아 있는 권력도 범죄 혐의가 포착될 경우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 수사 그 자체가 선일 수는 없다. 범죄가 있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만이 정당하다.


문재인 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로 검찰 수사까지 이뤄진 사건이었다.


김 전 특감반원의 폭로한 환경부 문건의 폭발성은 그 작명이었다. 청와대 특감반에서 환경부를 담당했던 김 전 특감반원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의 문건을 환경부 관계자로부터 건네받았고, 이 문건을 폭로했다. 환경부는 해당 문건을 김 전 특감반원의 요청으로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환경부가 작성한 문건이었고, 산하기관장들의 사표 종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문건은 야당과 언론 등에 의해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명명됐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휘발성이 컸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 등이 연루돼 구속됐던 문화예술계 인사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정부 지원 배제 명단이었다. 이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문화예술계 인사로 모두 민간인들이다. 정부 부처에서 산하기관장들의 이름을 올린 리스트와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검찰은 이 블랙리스트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에 맡겨졌다. 서울에는 중앙, 동부, 남부, 북부,서부지검이 있는데 이 중 최대 조직인 중앙지검에만 특수부가 있고 나머지 지검에서는 형사부 하나 특수 사건을 담당한다. 동부지검 형사6부는 동부지검의 특수부격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주 타깃이었다. 청와대는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항변해 봤지만, 언론과 검찰은 모두 믿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 전 장관에게 출국금지가 내려지고, 자택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 전 장관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여기서 한 차례 반전이 일어난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이한 것은 영장 전담 판사가 기각 이유를 상세하게 기재한 것이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판사는 462자에 이르는 기각 결정 이유를 언론을 통해 알렸다.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김 전 장관이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적다”라고 적은 것까지는 일반적이다. 박 판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해 볼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 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 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직권남용의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까지 말했다.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범죄 혐의 소명,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 등만을 살피지만 사실상 검찰의 기소가 잘못돼 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기각 결정문이었다.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논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검찰은 결국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주진우 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기소 후 안동지청장으로 발령이 났고, 직후 사표를 던졌다. 인사에 대한 불만이라는 게 언론의 해석이었다. 언론에서는 정권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한 주 부장에게 좌천성 인사를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다른 대부분의 사건이 그렇듯이 사람들 기억에서 이 사건이 잊혀갈 무렵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정국이 한창이었던 2019년 9월 30일 열린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검찰의 공소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부패 사건 전담인 형사25부 송인권 부장은 “검찰 공소장에 장황한 표현이 많고, 모순되는 내용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소장 화면을 법정에 띄워 “따옴표가 계속 나온다. 대화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인데, 판사 생활 20년 하며 이렇게 상세하게 대화 내용이 나오는 공소사실을 본 적이 없다”며 “공소사실 자체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산만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기재됐다”라고 말했다. 또 김 전 장관 지시로 한국환경공단 전병성 전 이사장의 사표 제출을 종용한 박천규 전 차관을 언급하면서 “피고인들이 텔레파시를 쓴 것이 아니라면 박 전 차관의 행위 없이는 범행 성립이 불가능했다. 박 전 차관에 관한 아무런 형법적 평가가 없다”며 “그가 피고인들과 공모한 것인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검찰에 협조적인 진술을 한 인물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해 선택적 기소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해당한다.


송 부장이 공소장에 대해 지적한 부분은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이다. 공소장 일본주의 형사소송법 상 개념으로 공소장에는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으로 형사소송규칙에 명시돼 있다. 쉽게 말하면 피고인은 충분히 나쁜 사람이라는 식으로 공소장을 써서는 안 되고,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만 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판사가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사건에서는 '두 사람이 권한을 남용해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내용만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건에서 검찰은 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으며 1~2쪽으로 끝나는 공소장도 많다. 예전에는 공소장을 아주 긴 한 문장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공소장은 공소장 길이만 55쪽에 이른다. 공소장에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청와대 추천 후보자가 최종 후보자로 추천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다 해 주어라", "기관 이사장직에 OO이 청와대 추천자로 정해졌다",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사가 한국당 출신보다 못해서 떨어진 것인가" 등의 발언을 한 내용을 적시했다. 피고인의 인성 등에 대해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는 말들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도 역시 재판이 진행 중이고 영장전담판사와 1심 재판장이 기소가 잘못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판결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다만, 대법원 판결까지 이 같은 판사들의 평가가 일관된다면 이 사건은 가장 잘못된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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