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비바티 Aug 20. 2024

왜 한국 직장인은 공황장애를 버티는가

모두가 퇴사를 꿈꾸고 퇴사자는 축복받는 사회.


버티다 버티다 퇴사를 결심하기 두어달 전부터 가끔씩 공황발작이 왔다. 

Panic attack. 영어로는 많이 들어본 표현이라 익숙한데 한국어로 공황 '발작'이라고 한다니 왠지 더 심각한 것으로 들려서 처음엔 놀랐다. 


나의 공황 발작은 100% 회사 스트레스에서 요인한 것으로, 일을 하다 갑자기 눈물이 터지고 호흡이 가빠지는데 멈출 수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이런 증상이 시작되는 것 같으면 급히 계단실로, 바깥으로 도망을 나갔다. 다행히 우리 남편은 아주 효율적으로 나를 달래는 법을 알았기에, 남편과의 통화가 주로 치료제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남편이 일이 바빠 전화를 받지 못하는 때는 그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게 쉬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런 공황 발작이 오는지 이유는 명확했다.

내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회사 생활은 너무 비참했고, 너무나 벗어나고 싶은데 당장 월급이 끊기지 않게 하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서른 초중반부터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게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더욱 두려웠다. 대출금과 카드값 등 매달 나가는 금액을 계산해보면 도저히 남편 월급만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떠오를 때면 공황 발작이 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우리 시골길. 그냥 하염없이 서있었다.


반 년간 함께 하던 우울증을 버릴 용기를 낸 이후, 퇴사를 통보하고 회사 동료들과 한명씩 티타임을 가지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라서 아주 터놓고 솔직히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운데, 떠다는 사람에게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다. 


그 중 몇 명에게는 내가 겪은 공황 발작에 대한 언급도 했는데, 놀랍게도 본인도 전부터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밤에 자다가 발작이 오는데 왜 그런지 한동안 이유를 몰랐다는 사람, 나처럼 일하다 발작이 와 계단실에서 혼자 펑펑 운 적이 몇번 있었다는 사람 등.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눈 모든 사람들이 내가 용기 있다며 부러워했고,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며 내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그런 말들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보다 더 오래 더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보이는데, 전혀 그만둘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물론 그 이유는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가능했다면 이직이나 다른 경제활동을 계획해두고 퇴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그들을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경험자로서, 본인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어가며 회사를 다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의 작은 마을. 더블 레인보우가 아름다웠던 어느 날.


나의 해외 경험은 다소 일반적이지는 않았던지라 (자연이 매우 아름다운 국립공원 내에 살며 호텔, 식당, 카페에서 일을 했다) 그 곳의 직장인들과 한국 직장인들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고, 내가 한국에서 경험하고 알아온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귀국한지 벌써 6년 째 -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주하며 두려움만 키워온 것 같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매달 말일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참 달콤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상식과 이유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은 여러 불합리함, 개인을 억누르고 조직을 우선시하되 기대 이상의 특출함을 보여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한 인고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을 포기하고 나오니, 나의 노동에 대한 비용이 내가 원하는 만큼 보상되지 않는 경우들이 보인다.

그 월급이 그리울 때가 많고, 사무실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이 나오는 그 편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이유도 모르는 채 눈물을 터뜨리지 않고, 무기력증에 시달리거나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Follow your dreams.


긴 흰머리를 곱게 한쪽으로 따고 카페에서 주문을 받던 캐나다의 한 할머니를 가끔 떠올린다.

나의 삶이 직장에만 국한될 필요도, 딱히 한국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나를 보호해주는 안정적인(편인) 회사의 틀 밖의 삶은 내가 혼자 개척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고 막막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유롭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만의 하루를 계획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살기 위해 떠난 오사카 여행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