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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

2강 소설 쓰기 과제 -자세히 묘사하기

by 하빛선

독일계 도시인 이곳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이 도시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을 이 길을 찾아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가장 좁은 골목길이라고 해서 내심 옆으로 몸을 돌려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가 하고 기대했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넓어 보였다. 두 사람정도는 손을 잡고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좁지만 좁지 않은 길이었다.

루마니아 브라쇼브 스포리 길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깔린 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걸까. 조각조각 모자이크처럼 바닥에 하나씩 박혀있는 돌들 하나하나에 개성이 느껴졌다. 이 돌 하나하나는 어느 누구에 의해 심어진 걸까. 10센티정도 되는 네모 반듯한 돌도 있고, 직사각형으로 살짝 일그러진 돌들도 보인다. 위로 살짝 튀어나와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돌도 있다.


세월의 바람 때문일까. 밟고 지나간 이들의 무게 때문일까. 분명 처음에는 같은 색이었을 텐데 이제는 검은색, 흑색, 회색 혹은 두가지색이 명암을 주며 섞여서, 직각사각형, 정사각형, 혹은 찌그러진 사각형 모양을 하고 오손도손 손잡고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가며 버젓이 여유롭게 길을 내고 있다. 한 줄로 길게 박혀있는 십여 개의 돌들은 마치 행진이라도 하듯 줄을 맞추어 좁은 길을 이어간다. 이 돌을 밟고 서 있자면 돌 하나하나를 밟아주며 같이 행진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행진하다 보면 10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길의 끝자락에 서 있게 되겠지. 이렇게 길을 내는 돌들처럼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세상에 박혀 살아가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길 끝자락에 가 있겠지.


이 좁은 길에 참 많이도 왔다 갔나 보다. 사람들의 흔적이 울긋불긋 파티라도 하듯 번잡하다. 양쪽벽면에는 빨강, 파랑, 초록, 검정, 보라색 물감으로 무언가를 쓰려고 한 흔적들이 지저분하게 남아있다. 오른쪽 벽면에 유난히 눈에 띄는 초록색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쓰려고 했던 걸까. 글씨라고 보기에는 너무 굵게 그려졌고 초록색 그림 바깥쪽을 빨간 줄로 그어놓은 걸 보면 분명 글씨였을 것 같다. 이름을 쓰려고 한 건가. 처음부터 너무 크게 시작해서 끝맺음을 못한 글씨가 아닐까.

부담스러운 큰 그림과 글씨들 사이로 작은 글씨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작은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하고 같이 온 사람들의 이름이나 소원도 적어놓은 양쪽 벽의 지저분한 낙서들이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이 중에는 누군가의 애인이름도 있을 테고, 누군가의 자식이름도 있겠지. 다녀간 사람들 이름 위에 또 다른 이름들이 놓이고 그 위에 또 진한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 등으로 자신들 더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 덮여있다.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도 존재하나 보다. 큰 글씨 사이에 소심하게 써 놓은 이야기들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왠지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소원인 것 같다. 그 소원 위에 또 다른 소원이 적히고, 그 위에 더 큰 바람이 그려진다. 그렇게 모든 소원이 절실하게 기도하는 듯 모여있다.


앞으로 쭉 뻗은 길은 멀고 좁아 보인다. 이 좁은 길 끝자락에는 이 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푸르른 산이 보인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골목길 같다. 산자락이 보이는 골목 끝으로 가는 길은 점점 좁아진 듯 보인다. 실제는 똑같은 넓이의 골목이지만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길은 이 도시에서 가장 좁은 길이지만, 우리가 항상 걸어가야 할 아름다운 인생길처럼 많은 이야기를 가진다. 내가 걸어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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