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을 여행

익숙해지지 않을 여행도 언젠가는 익숙해지지

by 하빛선

여행을 하다 보면 첫날은 늘 불편하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도시를 방문하여 익숙하지 않은 숙소에 짐을 풀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나름 유명하고 근사한 장소들을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이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숙소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지역의 지리도 제법 눈에 들어오게 되어 낯설음이 덜해진다. 물론 모든 여행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루 이틀의 짧은 여행을 할 때는 그곳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떠나야 하고, 볼만한 것들이 많지 않거나 사진만 믿고 예약한 숙소가 실상 너무나 형편없을 때는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익숙함에 늘 시간이 걸리는 내 여행스타일로는 한 도시에서 최소 사흘에서 일주일정도는 보낼 수 있는 여행을 선호한다.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늘 바쁜 사람들이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여행은 대부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여행들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나 쉼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이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시키고 다른 모습의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익숙해지기까지 겪어야 할 불편함 또한 내 몫이었다. 가끔은 일상생활 속에서 가졌던 긴장감이 갑자기 풀어져서인지 여행을 갔다가 몸이 축 늘어져 누워만 있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내가 기대했던 여행의 낭만을 벗어나거나 숙소나 이동수단이 불편한 여행은 자꾸 주저하게 된다.


며칠 동안 머물면서 기분 좋았던 그래서 이미 익숙해진 곳에 다시 방문하게 되고, 좋았다고 느꼈던 숙소, 맛도 좋고 가격도 괜찮았던 식당에 또다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느꼈던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다시 찾게 된다.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간혹 들지만 모험은 하기 싫고, 다시 겪어야 할 불편함과 낯선 환경을 생각하면 계획을 짰다가도 장소를 변경하거나 아예 계획을 포기하고 집에서 쉬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의 인간관계가 바로 이런 여행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서는 더욱더 그렇다. 젊었을 때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함께 한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정이 들어 좋은 관계가 된다. 친구들 중 누군가 한 명이 멀리 떠나기라도 하면 모두 아쉬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점점 불편해진다. 친해지려는 노력이 귀찮아지고 나하고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거리를 두게 된다.

같은 추억을 간직한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시간 보내는 것이 더 편안하고 좋다.

예전에는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스트레스를 풀곤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서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버거워진다. 특히 일적으로 만나거나 소개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사람이 힘들어진다.

늘 불편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의 첫날 같은 사람들로 인해 가끔씩 마음이 쪼그라진다.

하지만 이 익숙해지지 않을 여행도 언젠가는 익숙해질 거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몇 번 힘든 발걸음을 하게 되면 점점 편안해질 거라는 것도 안다. 우리의 삶은 여행이며 우리는 여행을 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익숙해지지 않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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