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소설가
우리 가족이 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또 소설 쓴다"라는 말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미리 상상의 소설을 쓰고, 남의 마음과 생각을 내 마음대로 단정하여 소설을 쓰고, 이 허무맹랑한 소설이 점점 길어지면 진짜인양 믿고 산다. 우리 마음은 모두 소설가이다.
우리 남편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쭉 설명한다. 그래서 이것도 조심해야 하고 저것도 조심해야 하고, 만약 일이 잘 안 될 가능성에 대비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해결책까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 제발 너무 멀리 가지 마. 소설 쓰지 마."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가끔 내 마음까지 단정 지어 말할 때가 있다. 분명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야기했는데 남편은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눈치를 본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여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라고 물어보았다. SNS를 보다가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고 나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남편은 대답은 안 하고 계속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 혹시 나한테 서운한 게 있어? 아니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운을 띄우는 거야?"라며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그냥 심심해서 물어본 질문이 남편의 머리를 너무 복잡하게 한 건 아닌가 싶다. 아마도 평소에 내가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많이 했었나 싶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들의 행동하나 말 한마디를 가지고 갖가지 생각을 한다. 그 생각으로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확신이 되고 오해가 되기도 한다. 나도 가끔씩 자세히 알지 못하고 추측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 점점 '아마도 그럴 거야'가 되고 결국은 '그렇구먼'이 되어버린다.
가볍게 시작한 추측들이 점점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변명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요즘 연예인들의 자살들도 사람들의 추측이나 소설 같은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떠한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뀐다. 감사했다가 짜증 났다가 평안했다가 화가 났다가 다시 긍정적이었다가 부정적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려고 했다가 계획을 바꾸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갑자기 하기도 한다. 또한 내가 의도했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이 불쑥 튀어나와 버려 돌아서서 후회한 적도 있다. 그렇게 내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변덕스러운 봄날씨 같은데 남의 마음이나 말들, 그들의 의도를 왜 그렇게 단정 지으며 마음대로 소설을 쓰는 걸까.
나는 오랜 시간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좀 있다. 외국에 살다 보면 편한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쉽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걱정할까 싶어서 전화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사실 자신의 삶도 버텨나가며 힘들게 살고 있는데 누가 멀리 사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듣고 싶겠는가.
한국에 들어가서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거나 가족들을 만나도 그동안 이곳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어떤 부담을 가지고 사는지 일일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은 내가 뱉은 몇 마디 말이나 이야기로 나의 상황을 판단당하기도 한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만남의 시간이 너무 짧다. 그렇다고 주저리주저리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붙들고 이야기하기도 민망하다. 각자 자기들 사는 이야기 하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서로 잠깐잠깐 들어주는 흉내만 낼뿐이다. 그래서인지 서로 주고받은 말들을 바탕으로 서로의 삶을 상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소설 같은 이야기가 된다.
나는 말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입 밖에 잘 내지 않는다.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 보려고 한다. 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고 난 후에야 정말 편한 지인에게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잘 해결되었다고 짧게 이야기를 하는 정도이다. 그러면 그동안 두문불출하고 무심했던 나를 두고 이래저래 소설을 썼던 지인들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살다 보니 내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설명하지 않으면 생길 오해 같은 것이 뻔하게 눈앞에 보이지만, 일일이 설명하기가 왠지 구차하다.
그러나 한번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이제는 소설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전화해서 물어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터놓고 이야기도 해 보련다. 만나서 커피 한잔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어보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상상하지도 않으련다. 우리의 삶은 에세이지 소설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