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바라기
한국에서는 시장에 가면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 깻잎이겠지만 내가 사는 이곳에는 깻잎이 없다. (이곳은 동유럽의 한 나라이다) 나와 우리 아이들은 깻잎을 좋아한다. 깻잎 장아찌도 좋아하고 깻잎에 싸 먹는 삼겹살도 좋아하고 닭갈비에 넣어 상큼하게 먹는 깻잎 맛도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는 깻잎이 없다.
뭔가 없다는 것은 가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깻잎이 들어가야 하는 음식을 만들때면 뭔가 빠진 듯 불완전한 느낌이 든다. 고기를 싸 먹을 때도 닭갈비를 먹을 때도 그 깻잎 몇 장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맛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집은 아파트라서 깻잎 심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화분에 심는다 해도 나는 식물 키우는 것에 재능이 없다. 우리 집에 들어온 식물들은 며칠이 지나면 시들시들 죽어간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인지 물을 너무 안 줘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10여 년 정도 깻잎도 못 먹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국분들이 한국에서 깻잎 씨를 가져다가 마당에 심기 시작했다. 드디어 깻잎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교회 마당에도 깻잎을 몇 그루 심었는데 6,7월에 잠깐씩 깻잎을 맛볼 수 있다. 7월말이 되면 씨앗이 맺히고,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이제는 봄마다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 깻잎이 이렇게 생명력을 끈질긴지 몰랐다. 그 깻잎이 내 깻잎은 아니지만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자꾸 그 깻잎을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나 컸는지 몇 개가 뿌리를 내렸는지 언제쯤 먹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쭈그리고 앉아 깻잎을 가만히 바라본다. 깻잎을 먹어볼 수 있는 기간은 여름 6-7월 잠깐일 뿐인데, 그 기간에 어디 출타라도 하게 되거나 바빠서 깻잎 따는 일에 시간을 내지 않으면 그 해는 깻잎 먹을 기회가 없어진다. 나는 깻잎을 한참 쳐다보며 '언제 클래? 빨리 커다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평소에 화단에는 별로 관심도 없던 나를 아는지라 지나가는 말로 "나 좀 그렇게 예쁘게 바라봐 주지. 무슨 깻잎을 그렇게 애가 타게 쳐다봐" 라고 핀잔 한마디를 던진다.
무언가를 그렇게 오래 예쁘게 쳐다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한 가지에 일에 집중하면 다른 일에 관심이 없다. 길을 가면서도 앞만 보고 가는 편이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잘 살피지 않는다. 그런데 이 깻잎 녀석은 나를 멈추게 한다. 한참 동안을 바라보게 한다.
이 깻잎이 다 자라면 이파리를 따서 아이들이 집에 오면 먹을 수 있게 맛있는 장아찌를 담가야지 생각한다. 삼겹살도 구워 깻잎에 싸 먹고 부침개도 해 주고, 수육도 한번 삶아 줘야지... 사실 내 것도 아닌 깻잎을 앞에 두고 벌써부터 침 넘어가는 상상을 한다. 물론 교회 사모님이 깻잎을 편하게 따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더 안달이 나긴 했다.
지금이 6월인데 올해 깻잎은 성장이 더디다. 충분히 자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그래도 올해는 깻잎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
오래도록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예전에는 남편을 그렇게 바라봤고 아이들을 그렇게 바라봤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 바라보는 눈에는 초점이 없다.^^ 초점을 맞춰보려 해도 웃기기만 하고 얼굴을 보면 '이제 많이 늙었구나'하는 측은함이 앞선다. 아이들도 이제 청년이 되어 아기 때처럼 귀여워 죽겠다며 바라보는 눈빛은 이제 안 된다. 그냥 듬직하다 생각하며 바라보는 눈빛정도?
오랜만에 깻잎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예쁘고 소중하게 기대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