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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노는 법

한국친구가 좋아

by 하빛선

루마니아의 사계절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름은 정말 건조하고 겨울은 습기가 많다는 것이 우리와 반대이다. 여름에는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겨울에는 4시부터 어둑어둑해져 마치 동굴 속을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서 산책이 어렵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돌아다니기 힘들다.


그나마 괜찮은 봄가을은 어디로 갔는지 추위가 지나면 바로 뜨거운 더위가 시작되고, 더위가 가면 나뭇잎이 색깔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가을 비와 바람에 힘없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다 보면 외출할 시기를 놓치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게으르고 체력이 약한 엄마는 두 남자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자주 가지도 못했다. 두 녀석이 떼쓰지 않고 집에서 노는 것을 보면,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개미가 4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개미에게 한국친구가 생겼다. 나이가 한 살 어리긴 했지만, 주재원으로 오신 어느 한국분의 아이가 개미네 반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름이 마크였다. 개미는 한국친구가 와서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진 듯했다. 이 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1, 2학년이 같이 공부하고 3, 4학년이 같이 공부를 한다. 마크는 3학년 때에는 4학년인 개미와 함께 공부를 했다. 그런데 개미가 5학년이 되면서 3학년이 된 밤톨이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먼저 친구가 된 개미는 밤톨이에게 마크가 자기 친구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밤톨이도 나름 자기하고 더 친하다고 주장한다. 어쩌란 말이냐. 친구가 한 명뿐인걸.


두 아이의 친구 쟁탈전은 수시로 일어났다. 같이 놀 때도, 친구집에 놀러 갈 때도, 누구를 초대하냐가 관건이었다. 친한 미국친구도 있고, 루마니아 친구도 있는데 한국친구에 집착하는 듯했다. 그래도 한국사람이라고 동질감을 느끼는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학교에 한번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학교에서 부모님을 호출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개미가 무슨 잘못을 했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잔뜩 긴장해서 학교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개미와 나를 앉혀놓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사실 개미가 쉬는 시간에 너무 한 친구하고만 놀고, 다른 친구들을 배제하고 있어요."

"아~ 한국친구가 와서 너무 좋아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심각한 건가요?"

"심각하다기보다 개미가 다른 친구들하고도 골고루 잘 놀고 협력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는데 요즘 좀 그렇지 못해서요.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시면 해서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나도 어렸을 적에 단짝 친구하고만 붙어 다녔던 터라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오후 수업중간에 초등학생들이 전부 다 나와서 놀 수 있도록 2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준다. 아이들은 이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공도 차고 놀이도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아이들과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노는 것도 교육의 하나로 생각한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래서 혼자 외톨이가 되지 않고 다 같이 재미있게 잘 놀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개미가 한국친구 마크하고만 다니고, 둘이서만 키득거리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친구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둘이 있을 때와 다 같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가 배웠으면 해서요."


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사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고마운 상담이었다.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행동이었다. 그런데 나도 처음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거니, 개미의 행동을 큰 문제로 보는 선생님의 말에 순간 울컥하였다.


이날 개미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엄마를 슬프게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 나중에 나에게 살짝 말해 주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얼굴과 언어가 다른 아이들과도 별문제 없이 지내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국친구가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도 나만큼이나 외로웠던 걸까. 한국이 그리웠고, 한국사람이 그리웠던 걸까.


그 후에도 마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몇 번의 문제가 있었다. 개미는 다 같이 놀고 싶은데 마크가 자기와만 놀기를 원해서 난처할 때가 많다고 했다. 상담 후에 선생님도 개미가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마크가 개미하고만 놀고 싶어 해서 개미가 힘들어한다고 했다. 마크 엄마와도 상담을 했지만 마크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아마도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편하다 보니 한국말이 잘 통하는 개미옆에 있는 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마크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말투나 분위기가 조금 냉랭했다. 개미에게 주의를 주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반대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이들의 일로 부모가 서로 싸우거나 상대 아이를 탓하면 아이들한테 좋은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둘이 친구인데. 우리가 서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다른 아이 탓하지 말고 서로 내 아이를 타이르는 게 좋을 듯해요. 저도 개미한테 주의를 줄 테니 어머님도 마크에게 잘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가 아이들 문제에 휘말리지 말고 지혜롭게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크엄마는 내말을 듣더니 바로 목소리가 호위적으로 바뀌었다. 서로 아이들과 잘 이야기해 보자는 내 말에 동의하였다. 생각보다 말이 통하고 속이 깊으신 분이었다. 그렇게 어른들 문제로 번질 일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얼마 후 마크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개미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친구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개미도 배웠을 것이다.


개미와 밤톨이는 지금도 한국친구들이 거의 없다.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졌지만, 루마니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반가워 했다.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도 생긴 것 같다.

이제 개미는 한국사람이든 외국사람이든 모두와 잘 지내는 사교성 좋은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개미가 성경책을 읽다가 갑자기 나를 부르며 소리쳤다

"엄마, 성경에 부침개가 나와!"

"뭔 소리여~~~" 다음화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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