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잊지 않기 훈련
한인들수가 적은 루마니아에서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학교에서는 영어와 루마니아어로 공부를 한다.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집 밖에 없다.
남편은 루마니아에 오자마자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하자고.
영어나 루마니아어가 좀 더뎌도 우리는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나중에 자라서 부모와 대화가 잘 통하려면 아이들도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보내는 거였다. 한인들이 워낙 적어 한글학교도 전교생이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밤톨이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개미는 그 당시 한글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빽으로 중학교 2학년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도 7년 동안 빠지지 않고 한글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지금은 별 불편없이 한국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한국어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매일 할 수 있는 방법, 한국어로 성경을 읽기를 시작했다. 루마니아에 올 때 아는 지인분이 아이들이 읽기 편한 쉬운 성경을 선물로 주셨다. 그 성경책을 매일 한 장씩 큰 소리로 읽게 했다. 뜻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읽으면서 한국어 발음과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을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부터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개미와 밤톨이는 처음에는 좀 힘들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숙제를 마치면 하나의 루틴처럼 성경을 편다. 개미는 1장씩, 한글이 여전히 서투른 밤톨이는 3절이나 5절을 읽게 하고 점점 양을 늘려갔다.
그런데 어느 날 개미가 조용히 성경책을 읽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밝은 얼굴로 소리친다.
"엄마, 성경책에 부침개가 나와"
"???"
성경책을 확인해 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부친께(부침개) 먹게 해 드렸다."
"헐!!!! 이건 부침개가 아니라 부친, 아버지라는 뜻이야"
살짝 실망한 듯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성경책을 읽다가 다시 소리친다.
"엄마, 피자도 나와."
"뭐? 피자가?"
알고 보니 "피차..."
아직 완전하지 않은 국어실력 때문에 이렇게 웃게 된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 대답도 다 못해주고 어쩔 때는 부족한 엄마의 지식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한다.
하루는 개미에게 동생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다 장남이야기가 나왔다.
"개미도 우리 집에서 중요한 장남이니까....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갑자기 개미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불쑥하는 말이,
"엄마, 성경시대에는 장남을 장자라고 불렀대."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그래 네 말이 많다."
"그럼 장녀는 뭐라고 불렀대?" 나는 농담처럼 물었다. 그랬더니 개미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장녀는(작년은)? 작년에는 장남이었지... 성경시대에만 장자고 작년에는 장남 똑같지..."
"두둥!!!!!"
무슨 소린지 한참을 갸우뚱하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웃기는지... 역시 개미다운 대답이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한자어는 어려워한다. 특히 밤톨이는 겨우 세 돌이 지나서 외국으로 나왔기 때문에 한국어가 더 어렵다.
내가 화가 나서 한참 동안 이래저래 잔소리를 쏟아붓고 나서 보면, 밤톨이는 화를 내거나 기분나쁜 표정 대신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짧게 설명해 주면 안 돼?"라고 말해 허탈하게 만들곤 한다.
카톡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려고 남편은 카톡을 길게 써서 보낸다. 특히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야 했을 때, 걱정되는 일이 너무 많아 자주 카톡을 보냈었다. 밤톨이는 한참동안 답변이 없다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너무 길게 쓰면 읽기가 힘들어. 짧게 나눠서 써 주면 안 돼?"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나름 노력했지만 한국에서 공부한 아이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둘 다 미국으로 대학을 가면서 부모를 떠난 지도 이제 개미는 거의 8년, 밤톨이는 6년째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씩 한국말로 수다를 떤다. 여전히 어려운 말들은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와 대화가 통하는 것만으로도 감사이다.
네 살, 여섯 살 때 한국을 떠났지만, 아이들이 무늬만 한국인이 아닌 속까지 한국인이면 좋겠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와 아들과의 수다는 오늘도 계속될 예정이다. 미래의 며느리가 싫어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