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극복하기
루마니아는 북한과 형제의 나라였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1989년 개방이 되기 전까지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였다. 한국보다는 북한이 더 가까운 나라가 루마니아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이 나라에 온 이후 언제나 듣는 말이 있다. 가게에 가거나 택시를 타면, 하물며 길거리를 걸어갈 때조차도 사람들이 자꾸 물어본다.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남한에서 왔어요? 북한에서 왔어요? “
"당연히 남한이죠."
혹은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를 중국사람(chinezi-키네지)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이런 것이 인종차별인가.
처음 루마니아에 왔을 때 집을 바로 구하기가 어려워 아는 분 집을 빌려 3개월 동안 살았었다. 그 동네는 외국인들이 거의 없는 동네였다. 우리가 밖에 나가면 마치 동물원 원숭이처럼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래도 어른들은 눈치라는 것이 있어 한눈으로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지만, 아이들은 정말 천진난만하기에 드러내놓고 신기해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다가와서 중국말을 하면서 놀린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빠 계속 “나는 중국사람 아니에요. 한국사람이에요. 남한사람이요”라고 대꾸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지겨워지고 귀찮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가끔은 중국사람인척, 일본사람인척, 아니면 못 들은 척하고 지나친다. 귀를 닫고 사는 것도 가끔은 편하다는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가 대신 대꾸를 해 주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루마니아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졌다.
하루는 밤톨이가 씩씩거리면서 집에 왔다.
"엄마, 오늘 지하철에서 루마니아애들하고 싸울 뻔했어. 그런데 내가 참았지."
"왜? 무슨 일인데?"
"나보고 자꾸 중국사람이라고 놀리는 거야. 욕도 하고. 내가 태권도도 배웠는데, 앞차기 한번 하려다가 그냥 참았어."
"잘했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말어."
한두 번 생기는 일이 아닌지라 아이들이 밖에 나갈 때면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릴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 일어났다. 미국선생님들 중에 노처녀선생님이 한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동양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소문이 부모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양아이들이 학교에서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선생님 때문에 상처받은 한 아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나는 좀 신경이 쓰였다.
5학년이 되면서 개미선생님이 된 그분은 역시 개미에게도 약간 차별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같았고, 동양인 학부모들에게도 별로 친절하지 않았다.
"개미야, 선생님이 너한테 잘 기회를 주지 않거나 동양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 같니?"
"응. 가끔 그렇긴 해, 근데 나는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인데..."
"엄마, 나만 잘하면 되지. 중학교 가면 선생님 바뀌니까 괜찮아."
"그래. 항상 좋은 분 들하고만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세상 살면서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차별하는 사람들도 있지. 잘 버텨보자."
어떤 공동체에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늘 존재한다. 그 사람을 피해 다른 공동체로 도망 간다 해도, 거기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회피한다고 해서 평화롭지는 않다. 최소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그 안에서 나를 지켜나가야 하고, 참아내고 혹은 바꿔가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늘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개미는 큰 어려움없이 좋은 성적으로 5, 6학년을 넘겼다. 예민한 밤톨이는 좀 더 힘들어했지만, 아이들은 늘 그렇게 힘든 상황을 잘 견뎠다. 결국 둘 다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으며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내가 한국사람들인 것이 당연했다. 한국을 벗어나면 내가 한국사람인 것이 크게 두드러진다. 나 한 사람이 한국의 대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모든 한국사람은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무례하면 모든 한국사람들은 무례한 사람이 된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차별은 무시하며 사는 것이 좋다. 나를 아는 사람이 차별을 한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개미와 밤톨이는 한국사람의 정체성을 100%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 가든 한국사람인 건 분명하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고 묻는다면, '한국사람이에요!!!'라고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