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는 부산이었다. 새벽 6시 20분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부산 종합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해운대 바로 앞에 위치한 숙소로 향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은 조금 막혔지만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택시 요금도 18천 원 정도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용이었다.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인근 식당에 들어갔다. 식탁 위 팸플릿에 홍보된 제주 맥주가 눈길을 끌었다.
부산에서 맛보는 제주 맥주
부산에서 마시는 제주 맥주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습한 기온 덕분에 우리 목은 안개가 낀 것처럼 덥고 눅눅했다. 시원한 맥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맥주를 마신 후 가격을 보니 제법 비쌌다. 12천 원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제주도 식당에서 마시면 7천 원 정도였다. 제주 맥주를 부산에서 마시는 특별한 혜택에 대한 대가라고 위로했다. 아내가 시킨 맥주이니 아내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서 뺏어갈 만큼 강력하진 않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해운대 해변가를 찾았다. 내일 아침부터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해변의 아름다운 자태, 빛나는 모래알과 차가운 바닷물의 청량함을 하루 먼저 경험해 보았다.
해운대 해변가에서 모래 놀이 중인 작은 딸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갔다. 송도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 코스는 부산 여행의 필수 코스일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야경은 아름다웠지만 우리 가족은 케이블카 안에서 다리를 후들후들 떨어야 했다. 중간중간 덜컹거리는 케이블 카 속에서 만약 케이블카가 바다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니 오금이 저렸다.
공포는 전염된다고 했던가? 아내도 덩달아 떨고 있었다. 아내의 상상력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마치 우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입 벌리고 포효하는 바닷물을 보더니 머리를 고정한 채 케이블카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하소연했다. 두 딸들만 신났다. 그들의 상상력은 아직 순수하여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다시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겠다는 엄살 섞인 다짐을 하고 기나긴 20여분의 케이블카 야경 감상을 마쳤다. 솔직히 그 아름다운 야경이 코로 들어갔는지 눈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지인들 또는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여행지의 후기는 사람마다 공감하는 정도가 천차만별임을 새삼 깨닫는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어제 사전답사를 했던 해운대 해변가로 출발했다. 비가 여전히 우리 몸을 적셨다. 그럼에도 바닷가에는 즐거운 놀이가 너무 많았다. 모래로 온 몸을 덮고 얼굴만 내놓고 사진 찍는 놀이, 모래로 집을 짓는 놀이 그리고 무엇보다 튜브에 올라타고 파도의 고저를 즐기는 놀이는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광대가 승천하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비가 오니 아이들 입술 색깔이 진한 와인 색으로 변해갔다. 아이들 건강이 염려된 우리는 서둘러 물놀이를 마치고 사우나로 가서 뜨거운 물에 온 몸을 집어넣었다. 하필 우리가 여행할 때 비가 와서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우리는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일요일 오후에 내가 신청한 수업이 있어 오전 8시 20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찍 조식을 먹고 숙소 앞의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목소리도 저음에다 부산 사투리가 묻어나는 친절함이 문장 곳곳에 숨어 있었다. 여유 있는 목소리에 난 시몬스 침대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 가족은 이번 부산 여행 내내 이동 수단으로 택시를 이용했다. 특이한 점은 부산 택시 기사들은 하나같이 우리 가족에게 많은 정보를 과하게 퍼주고 싶어 하셨다. 어디는 가봤냐? 어디를 가려고 한다는 나의 여행 계획에 청문회를 갑자기 열기도 했다. 그곳은 볼 것이 없는데 왜 가려고 하는지 따져 묻는 듯했다.
예를 들어, 태종대 등대를 직접 보고 싶어 발로 직접 걸어 올라가려고 한 우리의 계획을 무시하고 택시 기사는 굳이 우리 목적지를 과감히 돌진하여 통과한 뒤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까지 데려다주셨다. 태종대는 유람선을 타고 절벽을 감상하는 곳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말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애초 계획도 있으니 정중히 다시 택시를 후진시켜 걸어 올라가는 입구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우리는 부산 택시 기사님들을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부산을 잘 모르는 외지인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고마운 일이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 종합버스터미널로 향하는 택시 안으로 돌아가 보자.이 택시 기사님도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어느 절 이름을 말하며 가봤는지 묻는다. 안 가봤다고 말하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숨을 내뱉는다. 거길 안가보고 뭐했냐는 말투가 조금 서운했지만 비가 그친 파란 하늘이 금세 내 마음에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 위 차들도 없기도 했지만, 택시 안에서 쌩쌩 지나가는 부산의 세련된 풍경을 바라보니 살짝 ‘하루 더 있어도 좋겠다’라는 아쉬움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첫날 부산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로 향했던 풍경과 사뭇 달랐다. 나보다 길 눈도 밝고 눈치도 빠른 아내가 먼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내는 택시 기사에게 화내며 따지기보단 기지를 섞어 말을 걸었다.
기사님 우리가 8시 20분 버스를 타야 해요
택시 기사는 흠칫 놀라며 되묻는다.
"아 버스 시간을 미리 알려 주셨으면 이 길로 안 왔죠. 이 길은 신호등도 안 걸리고 쭉 달리기만 하니 그게 좋은 길인데~"
손님의 입장에선 용납이 안 되는 말씀을 하시고 계셨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의 안전이었다. 택시 기사와 논쟁을 하며 감정을 자극해봐야 우리 손해였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인 8시 20분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만 말하고 일체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상황 판단을 한 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속도에 자신이 선량한 외지 관광객 가족을 속였다는 죄책감을 날려 버리기라도 하듯이 차선을 바꿔가며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신호등도 무시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부산에서의 짧은 2박 3일의 여행 동안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비가 오는 날씨도 여행의 자유를 축소시켰고 제주 맥주의 바가지도 있었다. 택시 기사님의 넘치는 친절로 유람선 선착지도 가 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우리 가족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부산이란 여행지가 풍기는 아름다운 멋을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마지막 날 마지막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 한 분의 뒤통수로 씁쓸함을 넘어선 분노를 느꼈다. 첫날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20여 분 만에 온 시간을 계산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50분 전에 택시를 탔다.
하지만 택시 기사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우리 가족이 차 시간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그 시간을 뒤늦게 만회하려고 신호등도 무시하며 과속을 하는 택시 속에서 가족의 안전을 위협당하는 공포는 생각보다 아찔했다.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탔던 송도 케이블카를 10번은 왕복할 정도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택시를 타기 전에 우리 가족의 버스 시간을 미리 말하지 못한 나의 부주의를 반성도 했다.
다행히 40분 만에 29천 원의 택시비를 지불하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버스표를 인출하고 버스가 대기하는 승강장까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뛰어가야 하는 수고는 우리 몫이 되었다.
택시 기사 한 명이 여행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족에게는 택시 기사 한 명이 여행지 전체 이미지까지도 대변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믿고 탈 수 있는 택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쩌면 고가의 언론 홍보보다 더 많은 손님을 여행지로 유혹하는 훌륭한 마케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