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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범용의 습관홈트 Mar 10. 2019

일은 하기 싫지만 월급은 받고 싶어

어느 직장인의 고달픈 하루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신기하다.

습관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뿌듯하다.


시계를 보니

출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회사 출근 버스에 몸을 싣는다.


새벽에

책을 읽고 글을 쓴 뿌듯함의 온도

아직 식지 않았음을 느끼며

버스 안에서

조용히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버스가 회사에 도착하고

회사 정문이 보이면서

조금 우울해진다.


매번 똑같다.

이 두려운 기분은 뭐지?


늘 그렇지만,

오늘 아침도 회사 정문을 통과하며

무거운 공기 한 사발을

깊이 들이마신다.


내 자리에 앉아 마자

반 자동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읽는다.


제발 새로 도착한 이메일이

10개 미만이길 기도하며

숨죽여 이메일 개수를 살펴본다.


다행이다.

밤사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내게 배달된 이메일은 20개나 됐지만

나의 이름은 모두 참조로 되어있다.

내가 당장 할 일은 없어 보인다.


앗싸~!!!

땡잡은 날이다.



물론 어젯밤 9시까지

야근하며 이메일 처리한 것은

안 비밀.


그래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야근은 가뭄에 콩 나듯이 한다.

왜 너 이제야 온 거니?


오늘 아침은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고 동료와 짧은 수다를 떤다.


늘 그렇지만

이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팀장님 호출이다.


예고 없는

호출로 등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응 괜찮아 월급 받잖아."


CEO 보고 자료를 리뷰하자고 한다.

2주 전부터 지겹도록 해 온 일이다.

보고 내용을 취합하고 정리하고

다듬어서  팀장님 리뷰를 거친다.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글자 모양은 이걸로 했다가

글자 크기도 바꾸길 여러 번.


리뷰하고 고치는 것은 육체노동.

문제는 감정 노동.


자료에 빼곡히 채워진

숫자들의 탄생 비밀에 대해

질문받고 대답 못할까 두려운 내 심장.


조금 전까지

압박받았던 소변의 욕구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일이 터졌다.

CEO 보고가 3일씩이나 연기되었단다.

나는 울고 상무님은 웃는다.


3일 더 리뷰하고 고치기.

일복이 터졌다.

오줌보도 터지려고 한다.


하도 많이 들어서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내 몸도 축 늘어져 의자 밑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회사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드디어 퇴근이다.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처리할 테니

일단 오늘의 나는 신나게

회사 정문을 쌩~하고 통과한다.


다시 회사 버스를 타고

내 보물, 아이들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과 가까워진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오솔길.


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이

허락도 없이 내 뇌를 침범한다.


급 우울해진다.

왜 이러지?


"응 괜찮아. 월급 받잖아." 


이 우울한 감정을 씻어 내려고

기분 좋은 일들을 상상해 본다.


갖고 싶던

스포츠 카를 타고 해변을 달리는 생각.


그리운 어린 시절 친구 생각.

첫사랑은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


이런 은밀한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난다.


현관문을 연다.

아이들이 내게 뛰어 온다.

이것이 행복.


아이들이

10분 넘게 내 몸에 달라붙어 있다.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아~

회사가 차라리 편할까.

아니다. 그럴 리가.


얘들아.

아빠 옷 갈아 입고

10초만 딱 10초만

등 좀 방바닥에 붙여 보자꾸나.

.

.

.

.

.

.

.


그리고

어김없이 다시 새벽 4시.

알람 소리가 울린다.




"응 괜찮아. 난 꿈이 있잖아."



오늘 새벽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뿌듯함의 온기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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