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만나고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다

아내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

by 이범용의 습관홈트

이 에세이는 제 삶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는 특별했다.


소개팅이나 맞선 등에 주로 애용되는 장소인 커피숍이나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어느 봄날 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저자이며 변화경영 전문가인 구본형 선생님이 주관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신청했고 2박 3일의 일정으로 가평의 한 펜션에서 다른 참가자 9명과 만날 예정이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여성 한 분이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진한 풀색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쓴 채 회사 서류처럼 보이는 종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그녀의 머리 위 선글라스는 유독 반짝거렸다.


보통은 여성의 외모가 눈부시다고 표현하지만 그녀는 선글라스가 더 눈에 부셨다. 첫인상은 오토바이족 같은 분위기였다. 가죽 재킷이 한몫 거들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청순가련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그때 첫인상이 그랬단 뜻이 니 오해는 없길 바라며.....


이곳에 온 참가자들 모두 삶의 애환이 한두 가지는 있기 때문에 먼 곳까지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은 그래서 애써 서먹하게 웃긴 했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져 있었다.


반면에 유독 그녀만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에 온 커리어우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사무적인 느낌이었고 그로 인해 나이도 있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 붙였다가는 따귀 한 대 맞기 딱 좋은 포스가 느껴졌다. 슬금슬금 그녀를 가급적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통과의례로 하게 되는 자기소개 시간이 찾아왔다. 난 낯선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낯선 업무 낯선 음식 낯선 장소 등 낯선 것들은 나의 맥박을 늘 빨라지게 만든다. 특히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내세 울 것 없는 내 인생사를 그것도 10분 동안 떠들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거부감과 동시에 살 떨리는 도전이었다. 초반 몇 마디부터 내 입안의 침은 바짝바짝 말라갔고 모세가 바닷물을 가르는 것처럼 내 목소리도 갈라 지려는 위기를 몇 번이고 가까스로 모면했다.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녀도 자기소개를 했다. 첫인상으로 오토바이족 포스를 느낀 터라 난 그녀의 얼굴을 외면했다. 내 양쪽 귀만 그녀의 목소리가 궁금한지 표시 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쫑긋하고 듣고 있었다.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내 귀는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고 난 딴 곳을 보는 척하며 그녀 얼굴을 살짝 보았다. 연애 사냥꾼처럼 내 행동은 자연스럽고 프로다운 행동이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쏙 들어간 보조 개는 눈웃음치는 그녀의 눈꼬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가 참가한 여성 중 유일하게 미혼임을 알게 되었고 나보다 무려 한살이나 어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현재 직장에 대한 불만을 듣고 있자니 난 벌써 그녀의 남자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같이 흥분하고 분노해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벌써 2박 3일의 마지막 날을 맞이해야 했다. 첫날 느꼈던 어색함은 이미 사라졌고 우리 10명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마지막 과제는 10대 풍광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장면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써서 발표했다.


그녀의 차례가 왔고 난 입이 찢어질 만큼 큰 소리를 내며 그녀의 등장을 환호해 주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같은 소리로 환호해 주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는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10대 풍광 중 한 장면은 그녀가 결혼 후 꿈꾸는 행복한 일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 두 명과 함께 침대 위에서 일요일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창문 틈으로 들어온 산들바람은 하얀 커튼을 춤추게 하는 전형적인 연애소설 속 한 장면이었다. 불현듯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자리는 꼭 나의 차지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자리가 무척이나 탐났다.






2008년 어느 따사로운 봄날.


그녀를 처음 만났던 모임 이후 난 다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최근 6개월 동안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다. 퇴사 이유는 아니꼬움이었다.


같은 부서 선임에게 업무적으로 물어볼 일이 있어 그의 책상으로 갔다. 고객에게 오늘 중으로 제품 견적을 제출해야 하는데 나의 계산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가 평상시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버릇이 없다며 예의범절을 꼬집으며 트집을 잡았다. 그의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그의 하수인도 한마디 거들며 그런 식으로 직장 생활하면 안 된다고 거든다.


순간 당황하여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체면을 중시하는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미안함을 표현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런 실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까지 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혹 떼러 갔다 혹을 하나 더 붙이고 온 기분이었다. 내 자리에 앉았지만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음에 쏙 든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잡고 회사를 다니려 했지만 그의 어처구니없는 텃새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백수생활은 7일 정도 지나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송부했다. 그리고 내 꿈을 위해 MBA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외출을 했다. 남동생 하고는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종종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였다. 만나는 목적은 남동생을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늦은 나이에 그것도 백수인 큰 아들이 MBA를 준비한다는 말이 부모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부모님 걱정이 태산을 이룰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허름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나와 남동생은 너무 빨리 술을 마셔댔다. 너무 오랜만에 본 동생이 반가워서 그랬는지 나의 비참한 요즘 백수 생활에 대한 한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나의 이성을 지배할 정도로 금세 취해 버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시비에 옆자리 아저씨들과 싸움이 붙어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서까지 연행되었다. 내 안에 억눌러져 있던 분노는 이 호기를 틈타 잽싸게 밖으로 표출되었고 낯선 사람들과 싸움을 했고 그 결과 경찰서에 붙잡혀 가게 되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담을 그녀를 만난 모임에서 개설한 카페에 올렸다. 글을 올린 목적은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데 뜻밖에도 내 글을 보고 그녀가 문자를 보냈다.


"다 큰 어른이 술 마시고 싸우다니 잘하는 짓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그녀의 문자는 내 마음의 붕대였다. 아프고 상처 받은 내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곧 그녀의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나를 어떤 사적인 감정이 아닌 그 모임의 친한 오빠 정도로만 생각할 뿐 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뜻 생일날 저녁이나 먹자고 제안한다는 것은 어설픈 욕심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새털처럼 가벼운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 경찰서 사건 때 걱정해 준 답례로 생일날 저녁 사주고 싶은데 시간 돼? 선약 있으면 어쩔 수 없고~"


내 속을 한참 태운 뒤 그녀의 답장이 왔다.


"선약 있어~"


쳇. 난 길게 문자 보냈는데 답장은 꼴랑 4글자라니.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기대를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심장은 몰래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녀의 생일날은 그렇게 나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9시가 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선약이 끝났는데 잠깐 볼 수 있는지 묻는다. 부리나케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고른다. 노란색 와이셔츠가 눈에 띈다.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30분이나 일찍 왔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 주위를 서성거렸다. 손에 땀이 났다.


몇 분이 흐르고, 그녀는 아이보리색 버버리를 입고 홍콩 영화 주인공처럼 바람을 가르며 나타났다. 저녁을 먹어 배부른 그녀는 한강을 거닐자고 제안했다. 서먹했던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서로 묻고 대답했다. 다음 대화를 어떻게 이어 나갈지 내 머리는 쥐가 나고 있었다. 그 고충을 아는지 그녀가 캔 맥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시원한 맥주 제안에 난 칼 루이스(100미터 육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 맥주 4캔을 사 들고 나왔다.


2008년 4월 30일의 늦은 밤 한강 공원


그녀와 내가 처음 단둘이 만난 날이었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이 잘 보이는 계단에 걸터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내가 술 마시고 경찰서 간 얘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였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바람은 시원했고 맥주는 그녀의 긴장을 풀어준 듯했다. 기분은 상쾌했고 웃음은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주었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어둠 속에서 흐르는 강물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가 내 왼쪽 어깨에 살며시 포개어졌다. 시간은 멈추었고 내 심장도 따라 멈추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난 연애 사냥꾼처럼 어색하지 않게 그녀를 왼손으로 감싸 주었다. 게임은 끝난 듯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자고 날 달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우리는 그녀 집을 향해 걸어갔고 난 자연스럽게 그녀 손을 잡았다. 입술은 내일을 위해 아껴두었다.


그 이후 뜨겁게 사랑한 우리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6개월 만에 결혼에 성공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주례는 구 본형 선생님께서 해 주셨다.


난 아내가 정말 고맙다. 아내를 만나기 전 나의 모습은 한마디로 목적이 좌절되어 낙담한 상태에서 어두운 골목길을 방황하던 사회적 부적응자였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나는 더 자주 웃고 더 자신감이 생겼고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며 살 용기를 얻었다.


아내는 진흙탕 속에서 나를 건져 준 구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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