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 INVU 리뷰
태연 만큼이나 꾸준하게, 동시에 준수하게 제 작업물을 내놓는 솔로 아티스트가 몇이나 될까.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태연은 여전히 이전과 같이, 그러나 이전보다 더 준수한 퀄리티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팝을 기반으로 두고, R&B, 펑크, 발라드를 조금씩 섞어 꾸려낸 앨범은 꼭 태연의 맞춤 옷 같다.
모두가 입을 모아 태연은 어떤 장르든 죄다 맞춤 옷처럼 소화해낸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태연 자신도 그게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이 가장 잘하는 것을 고르라면 난 단연 팝일 거라고 대답할 테다.
과하지 않은 절제된 감정 표현, 보드랍지만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음색, 타고난 박자감까지. 대중이 사랑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팝'에 제격인 목소리를 가진 게 태연이라는 뜻이다.
신스가 튀지만 미디움 템포로 유려하게 흐르는 하우스 팝 INVU, 퇴폐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팝펑크 Can't control myself, 디스코 리듬을 기반으로 차분하게 흘러가는 팝 어른아이,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태연은 대중에게 다가선다. 그야말로 태연의 목소리가 이지리스닝을 만드는, 팝의 주요 요소가 되는 것처럼.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이 어디냐 묻는다면 태연의 담담함, 퍼석함이라 꼽겠다.
사랑을 노래하는 앨범 치고 태연은 고조된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다. 터지는 고음 파트가 없냐고 묻는다면, 당장 타이틀곡 INVU에도 터지는 고음 파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곡마다 태연은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단 오히려 담담히 감정을 누르는 느낌을 준다.
그게 이번 태연의 앨범을 메마르고 차가운 사랑의 감정을 모아, 라고 설명한 이유다.
태연의 설명에 따르자면, 태연 노래의 기본적인 톤은 '쿨톤'이라고 생각한다. 음색 자체에 포근한 면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의 '창법'이 태연 노래의 퍼석함과 차가움을 완성한다.
성숙해져가면서 맑기보단 조금 더 탁해진 목소리 톤은 물론, 기본적으로 숨을 많이 섞지 않고 강하게 내뱉는 창법은, 곡의 고조된 절정에서도 담담함을 유지하는 태연만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 곡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절로 생각난다.
을을 자처하고 사랑을 퍼주던 화자와, 늘 그에 못 미치던 사랑만을 돌려주던 청자의 연애. 늘 화자 쪽으로 기울던 마음의 축이 어느 순간 청자에게 기울고, 화자는 그런 청자를 이제는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화자는 청자를 받아들인다. 나를 따스하게 안아줄 사람은 너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고 하던가. 식어버린 마음은 다시 따뜻해질 수 없는 걸까. 사랑한 나는 후회가 없어, 말하며 결국 화자는 완전한 이별을 고한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앨범의 소개글처럼, 태연의 선공개곡 Can't Control Myself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들이 배우인 것처럼, 이번 앨범의 순서는 꼭 영화 한 편의 플롯과도 같다.
앨범의 흐름을 짚고 넘어간 이유가 있다. 이 앨범의 흐름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태연의 절제된 감정에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매 곡이 감정의 폭발을 담고 있다. 영화로 치면 분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떼어내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 네가 부러운 을의 연애도, 내게 매달리는 너를 밀어내는 차가움도, 너 없이 안된다고 생각하며 사랑 가운데에 있는 연애도,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며 끝을 고하는 이별도. 뭐 하나 담담하게 소화해낼 수 없는 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의 앨범은 과하지 않다. 싱글로 각 트랙들을 듣지 않아도, 앨범 전체를 재생해두어도 과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없다. 그건 아마 태연 특유의 회색빛, 차가운듯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감정 표현 덕일 것이다.
한층 성숙해진 태연의 음악 세계.
진부한 홍보멘트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앨범 소개글을 쓰라고 하면 누구라도 쉽게 떠올릴만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문장이 그 어떤 어구보다 태연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끓지 않고, 타지 않고, 혹자는 미지근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13곡은 태연의 성숙해진 세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 같다. 한두 가지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과 장르를 아우를 만큼 성숙해진 태연이라는 사람 자체와 음악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준수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의 INVU 뮤직비디오와 무대는 아르테미스 신화를 차용함은 물론, SMCU의 중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광야'의 모습을 여러 가지 상징들로 보여왔다. SMCU가 채 만들어지기도 전 데뷔한 소녀시대를 '음악의 여신'으로 표현해 SMCU에 포함시키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아르테미스는 '소녀성'을 대표하는 신이자, 오리온과의 사랑이라는 헌신적인 신화를 가지고 있는 신인만큼 여러모로 곡의 내용과 소녀시대 리더라는 특수성을 가진 태연에게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단 애초에 태연의 앨범 자체가 팝 앨범인 만큼 굉장히 이지리스닝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연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비주얼과는 별개로, 팬들의 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태연의 이번 타이틀곡 컨셉은 SMP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아티스트가, SMP 특유의 강렬함은 없는 앨범을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 꾸역꾸역 SMCU를 넣어보겠다는 억지스러움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조금 더 독특한 커플링곡을 들고 나왔다면, 거기에 이런 컨셉을 넣었다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