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프로듀싱의 정석

IDLE - I NEVER DIE 리뷰

by 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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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터프하고 날렵하게 귀환의 신호탄을 쐈다.




새로운 분기점, 아이들에게 이번 앨범은 단순히 첫 번째 정규 앨범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퍽 불명예스러운 사유와 과정을 거친, 거의 센터와 마찬가지였던 주요 멤버의 탈퇴 이후 처음 맞는 컴백. 아이들 멤버들에게는 이번 앨범이 일종의 분기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전과 지나치게 다른 색을 보여서도 안 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는, 딜레마 같은 상황에 처했을 거라는 뜻이다. 아이들만의 독특한 색채는 유지하되, 퍼포먼스과 컨셉에는 어느 정도 힘을 빼고, 멤버들 간 파트 밸런스를 새로 맞추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 중차대한 그룹의 존속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과연 잘 극복해냈을까?


그에 대한 질문은 앨범의 제목으로 대신하겠다.

I NEVER DIE, 아이들은 위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타이틀 곡 톰보이는, 기존의 아이들 특유의 오싹함과 좀 더 가벼운 키치함이 공존한다.


대한민국에는 한 발 늦게 시작된 락의 재유행을 십분 활용했다. 하드한 펑크록도 아니고, 걸쭉한 락 발라드도 아닌, 신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정도의 구성을 취하되,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가사로 아이들의 오싹함을 살렸다. 브릿지에서 조금 더 음울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살리고 코러스에서는 강렬한 기타 리프로 신나는 분위기를 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코러스에 일부러 삽입된 것처럼 들리는 묵음 - 삐 소리 - 처리는 되려 아이들의 savage한 이미지를 더욱 고조시키며 앨범의 컨셉을 공고히 한다.


아이들의 프로듀서 전소연의 지난 솔로 앨범에서부터, 우리는 프로듀서 전소연의 락 장르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전소연은 사랑하는 음악 장르를 멋지게 연출해내며, 그녀의 영리함을 다시 한 번 뽐낸다.


그녀의 영리함은 단순히 솔로앨범, 윈디 활동 당시와 비해서 조금 톤다운이 된 분위기의 락을 타이틀 곡 톰보이로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는다. 두 번째 트랙, '말리지 마'에서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발랄한 락의 매력 또한 보여준다. 강렬한 기타리프나 드럼 킥 등이 주는 락 장르만의 풍부함을 강조하되,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악적, 비주얼적 변주를 통해 각 곡마다 락 장르의 다채로움을 소개한다.


전소연은 자신이 사랑하는 장르에 대한 애정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락이라는 장르를 가사, 음악의 구성 등의 변주를 통해 아이들에 어울리도록 손 보았다. 그것이 아이들의 첫 락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이 마냥 어렵게만, 또 낯설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일 테다.








타이틀 곡 외에 들어볼만한 곡은 2번 트랙 말리지 마와 6번 트랙 ESCAPE.


톰보이에 비해 조금 더 밝고 이지리스닝인 락 트랙 말리지 마는, 취향을 타지 않고 들을만한 가히 드라이브 송에 가깝다. 아이들의 밝은 노래가 들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만한 편안한 곡이다.


6번 트랙 ESCAPE는 민니가 참여한 곡으로, 민니의 음색에 무엇보다 어울리는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앨범에서 가장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갖고 간다. 강렬함보다는 차분함에 초점을 맞춘 기타 소리가 멤버들의 음색과 어우러져 잔잔한 곡을 완성한다. 아이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들어볼만한 곡.








음악 외에도 앨범의 비주얼적인 면모를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트렌드를 이끌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시도한 지나치게 실험적인 패션이나 메이크업은 시도하지 않았다.

되려 아이돌 팬덤이 사랑하는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도 있는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들이다. 기본 수트에 살짝 트위스트를 준 의상, 멤버들에게 어울리되 다섯 명의 조화를 신경 써 겹치지 않도록 스타일링한 헤어, 멤버들에 맞게 퍼스널하게 설계된 메이크업까지. 최근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들의 비주얼에 대해 격한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팬덤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왜 큐브는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을까?

답은 대중성이다.

거칠고 자극적인, 아이들 특유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조금이나마 친숙하게 다가가고,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면 조금은 양보도 필요하다. 큐브의 비주얼 디렉팅이 그 양보를 담당한 모양이다.

음악에 자극적인 요소를 잔뜩 섞어 아이들의 색을 살렸다면, 비주얼적으로는 멤버들의 미모를 최대치로 끌어내 잠재적 팬인 대중들, 혹은 라이트 팬들을 유입시키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상대적으로 코어 팬덤보다는 대중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가 많은 걸그룹의 역사를 따라보겠다는 거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게 있다면.




과감하고 자극적인 가사. 그게 아마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처럼도 느껴진다.


아이들 곡은 언제나 도전적인 시도는 있었지만 이토록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술과 섹스, EX를 시원하게 다루는 아이돌은 지난 시간 흔하지 않았기에, 특히나 여성 아이돌 그룹이라면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기에 하나의 좋은 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이런 자극적인 행보는 장점 만큼이나 단점을 갖고 온다. 이런 자극적인 가사에 거부감부터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지난날이 썩 대중적인 성격을 표방한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지난날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라는 중립적이고 대중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가사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이번 가사가 우려되는 이유는 남성 팬과 대중의 이탈이다. 물론 아이들의 팬덤은 여성 비중이 더 높고, 애초에 걸그룹 노래를 자주 듣는 라이트한 팬들의 비중도 여성이 크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걸그룹의 주 수입원은 팬덤보다는 대중성에서 기인되어 온 것을 생각해보면,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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