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번 차트 리뷰는 핫백 리뷰라고 쓰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Midnights 앨범 리뷰라고 읽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리뷰를 쓰려고 미드나잇을 들으면서 차분히 생각해보는 와중에도 무슨 멜론 실시간 차트도 아니고 빌보드 핫백이 이렇게 줄세우기 되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질 않는다. 게다가 에어나세일즈도 필요 없이 오직 스트리밍 지수만으로도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빌보드의 공식 입장이다. 실로 놀라울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10월 21일 발매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10번째 앨범 Midnights는 앨범의 제목처럼 상당히 잔잔하고 차분한 트랙들로 가득차있다. 다운된 템포의 팝들로 가득차있어, 정말로 잠 못 들고 지새우는 밤에 전체적으로 플레이하기 좋은 앨범으로, 전작 evermore의 차분한 분위기가 1989에서 주로 사용된 팝에 결부된 완성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밝은 업템포 곡들을 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뮤트톤의 이번 앨범에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을 차근히 보여주면서 그녀의 또다른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있는 과정임에 틀림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번 앨범은 사실 눈에 띄는 빛나는 리드싱글 하나가 있거나 튀는 곡이 있다기보다는, 앨범 전체를 플레이했을 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유려함이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드싱글 안티 히어로를 제하고는 거의 앨범 트랙리스트 순대로 핫백 순위가 결정된 것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23곡(디럭스 앨범 기준)이 모두 다운된 템포에 속삭이듯 들어오는 보컬의 무기력함 같은 것들을 공통점으로 두고 아주 약간의 변주만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전 곡을 플레이했다고 하더라도 한 곡이 기억에 남거나 계속 듣고 싶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을 거다. 리드싱글로 꼽힌 Anti-hero조차 기억에 남는 곡은 아니다. 프로모 싱글로 꼽힌 Bejeweled나 Question...?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중독성이 있거나, 거대하고 화려한 사운드를 자랑하거나, 드라마틱한 전개가 일어나거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곡은 정말 단 한 곡도 없다. 그냥 어떤 곡엔 좀 더 비트감이 있고 어떤 곡엔 좀 덜 있고 하는 정도의 차이. 개인적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나 레드를 뛰어넘을 정도로 다채롭고 빛나는 앨범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높은 평가를 받고 엄청난 인기를 끈 데엔 이 앨범을 '누가' 발매했느냐에 그 이유가 있겠지. 조금은 뻥튀기되어 평가되는 면도 없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두어 번쯤 이 앨범을 플레이한 후엔 한 곡 한 곡을 리뷰하는 것이 무의미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운드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시간적으로 스물세 곡을 리뷰하는 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정하고 리뷰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앨범 재생을 다시 누르고 나니 새롭게 들리는 곡들이 꽤 있었다. 그런 곡들만 몇 가지 골라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이 앨범의 리드싱글, Anti-Hero에 대한 감상이다.
심플한 비트 위로 쌓이는 단순한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포인트인 신스팝으로, 레트로한 느낌도 나지만 동시에 테일러 스위프트만의 색이 더해져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상당히 불안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가사에 비해 테일러 스위프트만의 따뜻한 색채의 보컬이 더해져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강조된 비트감을 통해 곡의 텐션 자체를 너무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리드싱글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심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를 곱씹고 마지막으로 뮤직비디오까지 시청하고 나면 이 곡은 이 곡만의 매력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꼭 화려하고 다채롭고 강렬한 것만이 음악이 가진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Anti-Hero에서는 음악의 또다른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큰 고저 폭 없이 진행되는 곡에서, 심심함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더욱 와닿도록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라나 델 레이와 함께한 곡, Snow On The Beach이다. 대체로 80년대 신스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는 앨범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의 곡인데, 미묘한듯한 스트링 사운드가 중심이 되고 굉장히 몽환적으로 힘을 빼고 다가오는 보컬이 포인트가 된다. 2절로 가면 힘을 뺐다가 코러스가 시작되는 부분도 그렇고 잔잔하지만 듣다보면 나름의 전개 방식이 있다. 그리고 라나 델 레이가 실제로 곡에 참여하므로써, 그녀의 몽환적인 색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을 누구라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테일러가 지난 앨범에서 많이 보였던 느낌은 아니기에, 테일러의 따뜻하고 뮤트한 앨범의 색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한 것처럼 들렸다. 테일러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가사를 잘 쓰고, 또 그런 곡을 쓴다고 생각해왔다. 아주 동화적이거나 환상세계 속에 있는 것만 같은 곡에 특화된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곡만큼은 실제 세계에 붙어있다기보다는 조금은 동떨어져 미묘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좋았다.
세 번째 곡은 특히 테일러의 새로운 정체성을 잘 보인다고 생각해서 리뷰하기로 결정한 곡, Vigilante Shit이다. 강한 베이스 사운드로 줄곧 흘러가는 벌스는 꼭 테일러의 전작 Reputation을 연상케도 한다. 강한 베이스 사운드와 약간의 하이햇 정도로 구성된 곡은 미니멀하면서도 테일러가 전하고자 하는 고요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테일러는 특히 Lover에서부터 정치적인 메세지를 곡에 섞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곡도 그러한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메세지를 갖고 있다. The Man에서는 그녀가 느끼는 한계를 슬프지만 밝은 느낌의 미디움 템포로 풀어냈다면 이 곡에서는 음산함과 고요함으로 변화한 시대의 여성들을 묘사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새로운 정체성, 그 중에서도 강인하고 전투적인 느낌의 페르소나를 보이는 것 같아 좋게 들었던 곡이었다.
네 번째 곡은 바로 그 다음 트랙, Bejeweled다. 대체로 이번 앨범은 신스팝을 선택하면서 비트감을 강조한 곡들이 많아 레트로한 앨범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곡은 특히나 그렇다. 정직하게 들려오는 비트감과 계속 멜로디를 깔아주는 신디사이저 사운드까지 80년대 신스팝의 영향 하에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로 흘러가는 앨범의 다른 곡들에 비해서는 약간의 비트감이 강조되어 조금은 신난다면 신나는 곡이다. 보석처럼 반짝인다는 곡의 제목처럼, 포인트가 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꼭 반짝이는 시각 효과를 청각으로 옮긴 것 같아 트랙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신데렐라에 이 가사의 화자를 비유해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도 매력을 배가하는 포인트이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곡은 바로 'Karma'이다. 개인적으론 테일러 스위프트 음악의 묘미는 비단 사운드에만 있지 않고, 가사에서 진정한 그 매력이 절정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그러한 맥락에서 골라본 곡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인터뷰에서 이 앨범 자체가 밤에 드는 생각들을 곡으로 옮겨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밤이라 특히 극대화된 감정들을 옮겼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Karma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애정이 극대화되는 어떤 밤의 생각으로, 업보 정도로 해석되는 카르마가 자신의 편이라는 자신감을 가사에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혐오가 만연한 20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골라보았다. 사실 사운드적으로는 몽환적이고 속삭이는듯한 힘 빠진 보컬,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느린 비트가 함께하는 전형적인 Midnights의 트랙 같아 따로 이야기할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말고도 차트에 새로 진입한 곡이 두 곡 있어 그 곡들도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65위로 데뷔한 샤키라와 오주나의 Monotonia로, 전형적인 라틴팝곡이다. 일렉트릭한 사운드로 시작해서 라틴 특유의 리듬감이 들어오고, 특유의 여유로운듯한 기타 사운드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느린 템포의 곡인가 싶다가도 코러스에서 빨라지는 비트감이나 기타 소리가 라틴팝 특유의 흥겨움을 보여준다. 확실히 미국에 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많다는 걸 매번 빌보드 차트 리뷰를 하면서 느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라틴 장르에도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다, 이 곡이 다른 라틴 팝들과 큰 차이를 주는 것 같지는 않아서 이 외로는 패스.
다음으로는 95위로 데뷔한 메간 트레이너의 Made you look이다. 브라스 사운드와 에너제틱한 드럼 사운드가 매력적인 팝곡이다. 메간 특유의 목소리와 브라스 사운드가 합쳐져 화려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주는 팝곡이다. 약간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뮤지컬 사운드 기반의 발랄한 팝곡 같아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상쾌한 곡이라 가을이라는 계절과 썩 어울린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가볍고 기분 좋게 들을만한 미디움 템포의 팝곡이다.
99위의 Miss you도 새로운 차트 데뷔곡이다. 강렬한 일렉트릭 사운드와 거친듯한 보컬 이펙트로 포문을 역는 곡이다. 펑키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비트나 그를 뒷받침해주는 피아노 사운드까지. 최근 EDM 사운드가 유럽 등지 등을 통해 다시 트렌드로 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트랙이다. 역시 일렉트로니카의 고장은 유럽인지라, 이 곡도 다분히 유럽스러운 사운드로 들린다. 다만, 코러스와 벌스 사이의 이음새가 헐겁다는 생각은 든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지나치게 분절된듯한 코러스와 벌스 사이의 온도 차이는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