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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보 Jan 15. 2023

소음이 위로되는 시절

저는 그런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https://youtu.be/iryz4EKHruM


00:00 The 1975 - People

02:43 YUNGBLUD - Strawberry Lipstick

05:27 YUNGBLUD - ice cream man

08:38 Black Oak Country - Since You've Been Gone

12:33 Gin Annie - Devil In Me

15:58 Harry Styles - Kiwi

18:59 Fall Out Boy - THE PHOENIX

23:08 5 Seconds of Summer - Teeth

26:30 Wayward Sons - Even Up The Scorech



유튜브 영상과 제목은 제법 장난스럽다. 강한 음악들이다보니 그냥 이렇게 가볍게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유튜브에 이런 느낌으로 업로드되는 영상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고.


그런데 사실 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그다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지 않다. 외려 굳이 따지자면 조금은 서글픈 정서 쪽에 가깝다.


정말 일해보고 싶었던 회사의 인턴 면접을 망친 게 그 계기였다.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막상 회사 면접에 들어가니 모든 게 다 어색하고 어려웠다. 면접관님의 표정과 말투와 모든 것에서 내가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음악 어플을 켰는데 문득 정말 세고 시끄러운 노래를 듣고 싶었다. 어두워진 하늘과 추워진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입은 셔츠까지. 모든 게 다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래도 울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자존심인지, 오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울고 싶지 않았다. 고작 이런 일로 우는 게 창피했다. 어쩌면 내 마음 속에선 면접 탈락이 별 거 아닌 거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볼륨을 키워서 날 온갖 소음 안으로 몰아넣고 싶었다. 면접에 대한 후회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시작하면 그 여정에는 끝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음악 어플에 들어가 아무거나 락을 틀었다.


때로는 강하고 또 강하고 강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것들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보단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일을 잊는 게 더 좋은 치료 방법일 때가 있다. 잔잔하고 따뜻한 것들은 되려 날 더 괴롭게만 만들게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확실한 건 요즘의 나는 소음이 위로가 되는 시절을 살고 있다. 우울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아, 때로는 차라리 생각을 비우고 다른 것으로 내 마음과 감각을 꽉 채우는 것이 필요한 시간을 살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들에게도 소음이 위로가 되는 시절이 있다면, 어쩌면 조금은 가엽고 안타까운 그런 시절을 살고 있다면 이런 음악이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최소한 나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생각을 비웠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보니 조금은 나아졌다. 앞으로 나아가 집으로 씩씩하게 돌아갈 동력을 줬다. 어떤 사람들에게도 이 음악 뭉치가 그런 일시적인 동력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고 긴 백수의 시간과 취업의 시간은 앞으로도 소음이 위로가 되는 시절로 남아있을 예정이다.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는 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지 아는 사람이니 그것만으로도 날 칭찬해주고 싶다. 우울과 좌절이 일상을 가득 채우더라도, 그래도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과 재미를 찾을 줄 아는 시간이 되길.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매끄럽게 정제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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