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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보 Sep 01. 2023

노력은 더 이상 가치가 되지 않는 시대

케이팝 업계를 준비하며 드는 생각

누구나 뉴진스를 듣는다.

뉴진스는 어떤 날의 원더걸스와 빅뱅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하나의 신드롬처럼 번졌다. 뉴진스를 듣는 것이 힙한 것이 되었다. 일종의 브랜드처럼 작용한다.

처음 그들이 데뷔했을 때는 하나의 새로움처럼 느껴졌다. 당연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들은 '얼마나 내가 멋진지', '얼마나 내가 열심히 하는지', '얼마나 내가 나를 사랑하는지' 말하기 바빴고, 단순한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아이돌 그룹은 손에 꼽았다. 우후죽순, 아이돌들은 입을 모아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너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트렌드가 그랬단 거다.

이제는 반대로 그런 그룹보다 뉴진스와 같은 전략을 내세우는 아이돌들이 더 자주 보인다. 깊고 무거운 이야기보다도 단순하게, 모두가 즐길만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 그룹들이 훨씬 많아졌다. 물론 예외적인 그룹들도 많지만 최근 데뷔한 그룹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케이팝 트렌드로 보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걸 좀 더 확대해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이제 카일리제너와 켄달제너는 더 이상 테크웨어를 입지 않는다. '올드머니'를 강조한다. 처음부터 부와 명예를 타고났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값비싸고 단정한 옷을 입는다. 사실 카일리제너의 패션 변화는 더욱 더 와닿는 지점이다. 배경과는 상관 없이, 카일리 코스메틱이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로 자수성가했음을 강조하던 셀럽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그녀는 그녀의 배경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패션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노력하는 것이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떤 시대나 그래왔지만 20대는 이제 진지한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고, 답답할 정도로 막막한 취업 현실에 손을 놓고 구직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은 소위 말해 '금수저'들을 부러워하고 따라하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평균 임금에 비해 훨씬 더 과장된 소비 트렌드 - 오마카세, 명품 소비로 대표되는 - 는 그런 심리를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면 최근 트렌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람들은 구태여 시간을 들여 새로운 영상과 음악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모아둔 음악을 듣고, AI가 추천해주는 것을 보고, 듣는다. 심지어는 이제 그 시간조차 견디지 못해 더 짧은 것, 더 단순한 것을 원한다. 틱톡으로 대표되는 숏폼 컨텐츠들과 그에 발맞춰 짧아지고 빨라지고 단순해진 음악들이 그를 뒷받침한다.

노력이라는 건 깊은 생각과 결부되어있다.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 그를 기반으로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게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을 살다보니 현실이 내 맘 같지 않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노력해야 하는데 그걸 바라지 않으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롤모델은 노력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된다.

과거보다 치열하게 기를 쓰고 악을 써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고, 그 소수에 꼽히는 사람들조차 그닥 '힙'해보이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배경 없는 사람이라며 무시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난 남자"는 나와 어울리지 못한다던 2010년의 길라임은 이제 그다지 사랑받지 못할 거다. 솔직하게 랜덤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인기와 공감을 얻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 화두가 뉴진스였는지 묻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테다.

뉴진스 멤버들이나 뉴진스라는 그룹을 기획하고 트레이닝해내고 PR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뉴진스가 꼭 그런 트렌드에 쐐기를 박는 그룹 같았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자신들이 '만들어진' 그룹임을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

멤버들도 그렇지만 메인 프로듀서인 민희진 역시 그렇다. 오히려 모든 그룹이 그렇지 않느냐, 고 되묻는다. 멤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그 자리를 위해 '노력했는지'보다는 얼마나 그 자리를 '즐기고 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 그들을 비춘다. 둘 모두 사실이겠지만 어떤 곳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그룹의 정체성과 메시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교를 해보자면 더욱 간단해진다.

뉴진스 이전에 가장 큰 신드롬을 일으킨 걸그룹이라고 하면 블랙핑크, 보이그룹이라고 하면 방탄소년단을 떠올릴 것이다. 블랙핑크 역시 물론 부유한 그들의 배경이 사랑받는 요인이 됐지만, 그래도 블랙핑크는 만들어진 그룹이 아니라 멤버들이 "만들어가는" 그룹임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공격적인 투어 스케쥴이나 자신들이 얼마나 멋진지 노래하는 가사들이 그랬다.

방탄소년단은 말할 것도 없다. 멤버들이 "직접" 쓴 노래를 기반으로 맹렬하고 공격적으로 사회에 대해 비판하며 데뷔했고, 큰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도 역시나 비슷한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렇게 케이팝에서도 '노력'의 가치는 점차 지워지는 중이다.

그게 못내 쓰게 느껴지다가도, 실은 나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컨텐츠를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진 나를 보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사람들은 음악에서까지 복잡해지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단순하게 살고 싶구나.

그렇다면 이 트렌드는 언제까지 갈까, 정말로 계속 노력은 가치를 잃을까? 단순하고 짧고 신나는 것들이 모든 걸 정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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