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바다

여름, 240730

by 하봄

우린 여름이 오면 파인애플 한 통을 사서 가까운 바다에 가곤 했다. 이 계절을 오감으로 즐기는 방법 이랬나 어릴 때부터 줄곧 지켜오던 너와의 약속 이랬나. 미간을 좁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조잘대던 입술이 참 예뻐 보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참새 같은 입으로 파인애플을 야금야금 먹던 너는 금세 반 통을 다 비우고 나를 바라본다. 그럴 때면 네 주름진 촉촉한 입술이 파인애플의 생김새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자 파인애플을 너무 많이 먹어 입이 다 까져버렸다는 너에게 나도 모르게 입을 맞췄다. 우리의 첫 키스는 비릿한 파인애플 바다 맛이었다. 까진 입이 아픈 줄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의 숨결로 파도를 일으켰지. 파인애플 향이 나는 파도라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우리를 커물텅 덮쳐 주었으면 했다.


해 질 녘 즈음엔 별 조각 같은 과육이 바다에 가득 차올랐다. 너는 상큼하게 빛나는 바다를 보는 게 여름의 행복 이랬다. 별 조각에 기대 누운 너를 볼 때면 나도 노란빛 바다에서 목적 없이 유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저 손을 잡고 둥둥 떠다니고 싶었다.


계절들을 보내며 둥둥 떠다니다가 다시금 여름이 오면 잠시 파인애플 두 통을 사 올까? 묻는 말에 나를 데리고 성큼 첨벙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은 잘 익은 파인애플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은 여름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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