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6학년)
나는 상상을 잘 한다.
학교 갔다 와서 내가 좋아하는 장독대 옆 감나무 아래 누웠다. 하늘에 하얀 구름이 천천히 장파봉쪽으로 가고 있었다. 문득 그저께 동네 형들한테 들은 전쟁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쟁이 난다면 피할 곳이 있어야 한다. 우리 집에는 방공호가 없다. 뒷밭에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일어나 삽을 들고 파기 시작했다. 혼자 하니 힘이 들었다. 울타리에서 호승이 형을 부르니 왔다. 내 계획을 이야기하니 좋다고 한다. 둘이 오후 내 땀을 뻘뻘 흘리며 팠다. 무릎 정도 되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오셔서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고 막 뭐라고 하셨다. 나의 깊은 계획도 모르면서 화만 내신다. 어쩔 수 없다. 아버지는 한 번 안된다면 안 된다.
1975. 8. 2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