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생존의 시대
70년대 졸업앨범은 촌스러운 아이들이 화면 가득하다. 엄숙한 표정의 선생님을 중심으로 양 쪽에 6명씩 다섯이나 되었다. 뒤로 다섯 줄. 맨 뒷 줄은 책상 위에 올라가 계단처럼 모양이 좋았다. 대부분의 학교가 과밀학급이었다. 기수가 다녔던 시골 학교도 그랬다. 줄어드는 학생 수를 이기지 못해 폐교되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한 학년에 두 반이나 되었다. 한 반에 50명 안팎이었으니 전교생 수가 600명이 넘었다. 좁고 어두운 교실에 아이들이 꽉꽉 들어찼다. 뒤틀리고 검게 변색 된 판자를 가로로 이어 박은 벽 사이로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손가락 힘으로도 부서질 것 같은, 얇은 유리문이 덜컹거리고, 청소시간이면 초를 문질러 대 마룻바닥이 반질반질했다. 교무실 급사가 땡땡땡 종을 치기 바쁘게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양지쪽 언덕에 기대어 말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했다. 그 시절 기수의 존재감은 화려했다. 온통 수 뿐인 성적표는 놀이에 서툰 기수를 방어하고 남았다. 어떻게 그런 규칙이 있는지, 기수가 내려친 딱지가 뒤짚어지지 않으면 친구 중 한 명이,
“야, 바람 때문이야. 다시 해.”
라고 말하게 했다. 당연한 것처럼 다시 딱지를 쳐야 했고, 치기 전에 친구가 만진 딱지는 부풀어 올라 잘 넘어가게 놓여 지는 마법이 부려지고, 그리고 기수의 서툰 손짓에도 멋지게 뒤집어졌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통했고, 모든 것을 잘해야 했다. 리더십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반장은 기수여야 했다. 1등이었고 반장이었던 기수가 행복했냐고?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편의에 따라 1등과 반장을 구분했다. 영악한 그들의 논리는 명쾌했다.
‘우리 반장은 공부 잘하고 성실하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반장을 존경하고 따른다.’
‘따라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선생님의 꾸중은 반장이 들어야 한다.’
공부만 잘했지, 타고난 유순함과 세상 물정 어두웠던 기수는 친구들의 논리에 휘둘렸다.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흔들리고 당황했다. 사실 그 시절 기수는 공부를 잘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서 하나 없이 오로지 교과서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주는 것 만으로 공부를 하던 때, 기수는 타의 모범생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 꼴 한 망태기 베어다 놓고, 하천 둑에 매어 놓은 염소 몰아오고, 그리고 밭에 나가 어머니가 갈무리 해 놓은 짐을 져 나르고도 호롱불 아래 앉았다. 왜냐고?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해야 했다.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숙제를 하지 않고 다음 날 학교를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써오라고 하면 꼭 세 번을 썼고, 다섯 번을 써 오라고 하면 다섯 번을. 17쪽부터 24쪽까지 외워 오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이러고도 1등을 못 할 수는 없다. 6년 내 1등이고 반장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