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4. 곤경

by 재학

그게 아니었다. 고요함은. 한밤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가슴과 머리의 평온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또다시 울리는 우렁찬 발성. 내 양쪽에 누워 있는 남자는 말로만 듣던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을 함께 가진 환자였다.

‘왜 내가 저 사람과 똑같이 호흡하고 멈춰야 하지?’

‘제발 숨 좀 쉬어.’

‘죽은 거 아닐까? 잠들었나? 저러다 숨을 쉬지 않으면 어떡하지?’

오른쪽과 왼쪽, 어느 쪽이 더 힘들었냐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고대부터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가장 효과적인 고문이 잠 안 재우기라는데 나는 지금 전통적이면서 가장 악랄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거다.

시계를 봤다. 처음 해외 나가는 기념으로 공항 면세점에서 산 시계는 야광이 선명했다. 시침이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 함께 자리에 누운지 30분도 안 되었다는 것 아냐? 30분 만에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뛰어난 고문 기술이다. 이 위기를 탈출할 궁리를 해 본다.

‘잠버릇처럼 발길질해 볼까?’

‘아냐. 그건 너무 유치해. 유치한 것보다는 티가 날거야.’

‘괜히 화장실 들락거리면서 잠을 깨울까?’

‘그것은…. 귀찮아’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스트레스다.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분노가 밀려오면 합리적인 판단은 날아간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덮어 본다. 다중이 사용하는, 세탁은 했어도 남아 있는 야릇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산속이라 초여름이지만 저녁에는 난방을 해 주었다. 집에서는 홀랑 벗고 팬티 바람으로 잘 수 있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하잖아. 추리닝까지 입었으니 당장 땀이 솟는다. 5분을 못 참고 이불을 제쳤다. 그 순간 분노보다는 차라리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구취라고 품위 있게 표현하겠다. 힘차게 푸푸 거리는 입술이 나를 향하여 더 힘차게 독가스를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있어도 분노는 전달되나 보다. 양쪽이 동시에 돌아누우면서 조용해졌다. 그렇게 밤새 이어졌더라면 그들을 고문 기술자라고 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완전히 고갈시키지 않고 여지를 남겨 두는 것, 그들은 탁월한 고문 기술자들이었다.

이 곤경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고민하던 중 네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누워 있다는 생각이 미쳤다. 신경이 네 번째로 옮겨지니 소음과 고요함이 주는 고통이 조금은 견딜만했다. 그도 소심하게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뒤척이는 느낌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저이도 잠 못 들고 있군.’

‘소심한 사람이거나 착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동류의식은 친근감을 주나 보다. 갑자기 그 사람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조심히 시계를 봤다. 그 와중에 두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새까만 밤이다. 이제 방법은 하나다. 가장 확실하면서 자연스러운. 어서 빨리 날이 밝기를, 그래서 이 방을 탈출하는 것이다. 6시 기상이랬지? 1시간 전에 일어날까? 너무 빠르나? 30분 전? 아냐, 그냥 밝으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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