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6. 항변

by 재학

(고문 기술자 정모의 항변)

뜻밖의 동행이다. 간절한 바람을 들어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신입인 정모에게 출장 기회가 온 것이다. 실속 없는 출장이라 대리들도 거절하여 정모까지 온 것인 줄 알면서도 좋았다. 사무실을 벗어난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과장에게 출장 다녀오겠다고 말하려 들어서니 디자인팀 혜미 씨가 과장이랑 무엇인가 의논 중이었다. 무언가를 가지고 오라는 것 같다.

“아 그거요? 알겠습니다. 직접 물어보죠.”

“응, 그래 내가 전화는 해 놓을 건데…. 좀 보내주면 안 되나? 꼭 직접 오라는지 원.”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 고생을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을 달랑 보내 달라고 하니 누가 좋다꾸나? 보내주겠어. 잘 설득해 보라고.”

말하는 과장의 표정도 그렇고 혜미 씨의 표정 역시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다. 정모가 들어서자 과장이 손짓으로 불렀다.

“자네도 옆에서 잘 거들라고. 혜미 씨 옆에 바싹 붙어 다니면서 말이야.”

“예? 뭘 말입니까?”

“응, 내일 출장 가는 것. 김혜미 씨랑 함께 가서 여기 상황을 잘 설득해서 기분 상하지 않게 하란 말이야. 그 고생을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을 전화 한 통화로 내놓으라니 기분 좋겠어? 아까도 통화했는데 선뜻 들어 주고 싶지 않은 눈치더라고.”

정모는 과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혜미 씨와 함께 출장을 간다니. 그것도 바싹 붙어 다니란다. 이렇게 좋을 수가. 행운이 나에게로 왔어.

입사 8개월째인 정모는 아직 미혼이다. 겉으로 봤을 때 번듯해 보이는 정모가 아직도 미혼인 것을 다른 사람들은 눈이 높다는 둥 초식남이라는 둥 말이 많다. 하지만 정모가 가진 고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다. 정모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그 병만 없다면. 정모도 그 몹쓸 병에서 벗어나고 싶다.

정모에게 남모를 병이란 다름 아닌 지독한 코골이였다. 가족들도 질겁하고 달아나게 할 정도였다. 일곱 식구가 방 세 개 짜리 주공 아파트에서 북적거리며 살 때도 정모는 당당히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당당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정모도 싫었다. 다른 형제들처럼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누워 자고도 싶고 형제들과 한 이불 속에서 잠들고 싶었다. 방 하나는 고등학생인 큰 형이 차지하고, 아래 두 여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안방을 사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방 하나를 둘째 형과 정모, 정모 아래 동생이 사용하는 것인데, 사실 그렇게 하려고 큰 노력을 했었다. 온 식구의 지혜를 다 동원해서. 그런데 어쩌다가 정모가 큰 형 대신 그 귀한 방 한 칸을 독차지했냐고? 자랑스럽지 않게 정모가 가진 몹쓸 병, 지독한 코골이가 그런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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