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7. 숨겨진 무기

by 재학

정모의 코골이는 식구들뿐 아니라 친인척, 온 동네에 유명했다. 어렸을 때 정모의 코골이는 기운차게 뛰어노는 아이의 활달함에서 오는 것으로 착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교를 들어가 책상에 앉아 있음에도 밤에 코를 고는 것에서 조금씩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한 것은 아니다. 온몸이 새까매지도록 골목을 뛰어다니며 노는 정모의 활달함으로 돌렸다.

‘아침에 나간 놈이 저녁 먹으러 들어는 오는구나.’

온종일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정모의 부지런함을 몸이 견디지 못하여 그 어린 녀석이 코까지 골며 자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식구들도 한 참 바쁠 때라 약간의 귀찮을 정도로 치부하고 견뎌줬었다. 그러다가 정모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식구들은 더 이상 참아주지 않았다. 또 오늘은 지옥과 같은 밤을 어떻게 넘겨야 하냐는 타박이 쏟아졌다.

정모의 코골이가 어떻길래 이런 난리냐고?

코를 고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정모처럼 코를 고는 사람은 드물다. 정모의 탁월한 호흡 리듬은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같은 리듬으로 빠져들게 했다. 정모가 잠이 드는 순서는 일정했다. 약간 높은 호흡으로 아기들이 쌔근거리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호흡으로 수면을 불러온다.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은 그런 정모의 호흡에 맞춰 자신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느 틈엔가 그 리듬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리듬을 따라 하다 어느 순간 리듬이 깨어짐을. 아니 깨야 함을 알아차린다. 쌔근거리던 호흡이 일순 잠잠하게 멈추기 때문이다. 얼마나 참아야 하지? 언제쯤 숨을 쉬어야 하지? 빨리 호흡을 하란 말이야. 동침자는 그때까지 정모의 호흡에 걸려들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긴긴밤을 몇 번이나 지나고 나서 알아채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마법의 호흡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슴을 쥐어뜯을 듯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름의 호흡하려 하면 놀랍게도 정모가 숨을 쉰다. 또다시 규칙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모는 그렇게 얼마만큼 기다려 준다. 편안한 밤을 기대하는 동침 자를. 동침자는 방심을 한다. 이제 편안한 밤을 보낼 거야.

그 방심이 실수였음은 다음 호흡이 가기 전에 알아차려야 했다. 정모의 멈추기 기술이 발휘된 것이다. 이제는 좀 더 오래 멈춘다. 그동안 참아준 동침 자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동침자는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쥐어뜯을 그것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온 신경이 정모의 코로 감을 어쩔 수는 없다. 두 번째 멈추기에서 어지간한 동침자는 패배를 인정한다. 그때까지도 일말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고민할 여지는 남았다. 세 번째 공격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리듬이 약했다는 반성과 함께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러려면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를 완전한 방심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10분? 20분? 10분은 너무 짧다. 20분은 너무 길다. 자칫 상대방이 깊은 잠에 빠져 버리면 정모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방법인데. 최상의 리듬을 위하여 밤마다 남모를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모를 거야. 상대가 깊이 잠에 빠져들기 직전의 시간을 알아야 한다. 그건 상대의 호흡을 정확히 파악하는 거다. 한 호흡, 두 호흡 심사숙고해서 하자. 너무 작아도 안 되고 요란해도 안 돼. 고른 숨소리. 얼마나 내기 힘든 소리인가. 그러다가 상대의 방심이 눈치 채일 때가 있다. 그건 아무나 알아차리지 못한다. 정모처럼 숙달된 달인이 아니면. 내 호흡을 따라온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어디 감히 내 호흡을 따라와. 쉽사리 내 줄줄 알아? 천만의 말씀. 나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러야 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다오. 숨소리 하나 없이 지켜보는 야릇한 쾌감이 온몸을 감싼다. 주먹을 쥐고 정모를 때릴 것 같은, 주먹 대신 발길질이 올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떤 동침자는 온몸으로 반항을 해 온다. 그런 도발에 넘어갈 정모가 아니다. 벌써 서너 번 호흡을 해야 했을 시간만큼 참아주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기 직전에 슬며시 풀어 주는 지혜.

이불과 베개를 챙겨 도망가거나 어둠침침한 방구석에 앉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거나 그도 아니면 말똥거리는 눈과 치미는 분노로 뜨거운 밤을 보내거나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형제들에게 걷어 채이거나 흔들어 깨워지기도 했다. 때로는 베개를 빼내서 머리가 방바닥을 울리는 고통도, 영문 모르고 걷어차인 허벅지를 부여안고 끙끙거리며 잠들기도 무수히 많이 했다. 그 어느 것도 정모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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