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샤브레
친구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정하는 친구도 비웃는 친구도 기수가 교실을 부리나케 나가는 이유를, 마렵지 않은 오줌을 한 시간이나 붙잡고 서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꾸중의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보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딱지가 져도 새살이 돋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인근 네 개 면 여섯 학교 졸업생들이 두 중학교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진학했다. 공립중학교와, 울타리 안에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학교였다. 아이들은 공립을 가고 싶어 했으나, 학교 선택은 뺑뺑이라 불린 기계로 했다. 물레틀처럼 생긴 상자 안에 숫자가 써 있는 은행알이 들어 있고, 손잡이를 돌리다 한 알이 떨어지면 멈췄다. 기수에게는 사립중학교 번호가 떨어졌다. 커다란 잘못이라도 저지른 기분으로 아버지 앞에 섰고,
“그것도 못 뽑냐.”
라고 힐난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잘못했구나 하고 주눅이 들었다. 다행히 중학교는 재미있었다. 공부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반장이 실장이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공부 잘하고 성실한 실장으로 3년을 보냈다. 과목별로 들어오시는 선생님은 수업 시간을 빼 먹지 않고 교실을 비우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 졸업을 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인근 도시나 같은 재단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기수는 어느 곳도 선택하지 않았다. 상급학교 진할 할 형편이 안되었다. 도시로 고등학교 시험을 보러 가는 친구 손에 껌 한통을 쥐어 주며 잘보고 오라고 했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껌을 받아 버스를 탔다. 고등학교는 학교마다 교복이 달랐다. 친구들이 각각 학교의 교복을 입을 때 기수는 광천동 공단으로 향했다. 과자공장이었다. 때에 절은 카시미롱 이불이 말려져 있는 기숙사에서 두 살 많고 다섯 살 많은 형들과 함께 지냈다. 배달 트럭이 바쁘면 조수로, 계란이 들어오면 계란을 깼다. 어떤 날은 50판이 넘게 깼다. 월급이 얼마였는지 기억에 없다. 아침에 여공들이 들어 왔다 저녁이면 썰물처럼 빠져 나간 공장은 조용했다. 심심한 형들은 기수를 놀려 먹고 심부름을 시켰다.
“야, 꼬맹이 이리와 봐.”
“...”
“새끼가 오라면 얼른 올 것이지. 내가 경비아저씨랑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 뒷문으로 들어가 과자 좀 가져와라. 아까 일하면서 박스 아래 숨겨놨는데 그거 빼오기만 하면 돼”
“싫어요. 형이 하세요.”
“이새끼가, 얌마 너도 줄테니까 가져와.”
기수는 과자를 가져오지 않았고, 방에 들어가 맞을 뻔했다. 과자는 두 살 위 형이 가지고 나왔고, 계란이 듬뿍 들어간 샤브레 과자를 얻어먹지 못했다. 오늘도 샤브레에 넣을 계란 30판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