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5.너에게 미안하구나

by 재학

일요일이면 기숙사 형들을 따라 공원으로 놀러 갔다. 공단 근방에서 자취하거나 기숙사에 사는 남녀 공원들이 모여들었다. 짝을 이루어 영화관으로, 시외로 사라지는 커플 속에 어린 기수는 멀뚱이 공원을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더부룩하게 자란 머리가 더 이상 학생이 아님을 알려주었지만 아직도 어린 학생이었다. 시골집에는 월급 받는 날이면 갔었다. 일부러 밤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어두워진 논둑을 걸어 마을에 들어섰다. 깜깜한 집 작은 전등 아래, 마루며 마당에 흩어져 놀던 어린 동생들이 오빠를 맞이했다. 동네 자랑이었던 오빠가 교복 입은 학생이 아닌 더벅머리로 들어서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힘든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일부러 괜찮은 척, 공장에서 배운 건들거리는 말로 지껄였지만 눈물이 고이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들어서는 아버지는 기수를 외면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너에게 미안하구나.’

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20년 30년이 흘러도 고향마을은 밤에 들어서야 편했다. 이르게 도착하면 일부러 읍내에서 길게 마트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어둑해지면 들어섰다. 밤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둠이 좋아 그랬다.

시골집에 두 번인가 갔다 오고 마음을 굳혔다. 공장에 더 머물면 안된다. 공부를 하자. 어렴풋이 담고 있던 검정고시를 하기로 했다. 일요일 형들이 공원에 가자는 것을 뿌리치고 검정고시 학원을 찾아 나섰다. 터미널 옆 시장 근처에 학원이 있다고 했다.

세 달 모은 월급으로 달세방을 얻고 학원에 등록을 했다. 과자 공장을 소개해줬던 버스터미널 옆 직업소개소를 또 찾아갔다. 소장이 학원에서 가까운 화공약품 도매상으로 데리고 갔다. 도매상 사장이 한참을 고민했다. 화공약품을 짐발이라 부르는 자전거로 배달해야 하는데, 그 일을 시키기에는 너무 어렸나 보다. 결국 월급을 그에 맞게 주는 조건으로 타협이 되었다. 기수와 타협을 한 것이 아니라 소개소 소장하고 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