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검정고시 학원
가게 일은 편했다. 잔심부름이 대부분이었다. 낮에는 가게를 지키며 청소와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검정고시 학원으로 갔다. 학원생 나이는 다양했다. 스무 살이 넘은 형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도 있었다. 학원 형들은 나팔바지에 쫄티를 멋들어지게 입고 다녔다. 파마머리를 휘날리는 쫄티 형 패거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때 한 권이던 사회과목이 세계사, 역사, 정치경제로 나위었다. 과목이 놀랍게 늘어났다. 더구나 봄에 시작한 학원을 중간에 들어가 뒤늦은 진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가게 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달려가 책상에 앉으면 피로가 몰려 왔다. 절반은 졸음으로 보냈다. 아득히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소리가 달콤하게 들리고, 공책 위 글씨가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허기와 피곤한 몸으로 시장통 순댓국집 앞을 지나가는 것은 또 다른 고문이었다. 검정고시 시험은 8월에 있다. 학원생 절반 정도가 시험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기수는 시험을 볼 준비가 안되었다. 허기와 졸음이 공부한 시간의 절반을 갉아 먹었고, 고등학교 3년을 3개월 야간으로 건너 뛸 수는 없었다. 시험이 다가오자 모의문제 풀이가 밤마다 이어졌고, 기초가 부족한 기수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해 여름은 몇 년 만의 폭염이니 하면서 무더웠다. 가게 짐발이 자전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배달하는 양도, 거리도 늘어났다. 순도 100% 염산을 옮겨 담다 튀어 손도 데이고 옷에 구멍을 내는 일도 줄어들었다. 계절이 바뀌며 추석이 다가왔다. 학원을 오가면서 지나는 시장이 북적거리고 기분도 알맞게 들떴다. 사장이 집에 갔다 오라고 월급에 천 원짜리 두어 장을 더 주었던 것 같다. 무슨 선물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선물을 살 돈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유행인 나팔바지를 입고 갔다. 고향 마을에 내릴 때 양손에 선물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반가웠다. 고향의 모든 것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반가웠다. 보름달이 밝게 빛나는 밤에 누구네 집 쇠죽방에 모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처럼, 어깨동무하며 다닌 중학교 때처럼 그럴 줄 알았다. 반가워 무조건 달려간 마음이 벽에 닿음을, 밤이 얼마 깊지 않았을 때,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친구들은 친구를 나누었다. 고등학교를 간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로 나누었다. 8:4, 기수와 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할 말이 없어졌다. 조용히 빠져나왔다. 차가운 달빛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기수는 그 뒤로 오래도록 고향 친구들을 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