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영등포역 앞 여인숙
당시 진학률이 늘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꽤 많았다. 중학교 진학을 못한 아이들은 서울로 올라갔다. 마을마다 서너 명씩 있었다. 친구들은 제화점이나 중국음식점, 봉제공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서울에 올라간 친구들은 명절이면 양손에 선물 바구니를 들고 고향을 찾았다. 그 친구 중 한 명이 서울을 가자고 했다. 명절을 보내는 며칠동안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의 인생에 관여할 위치에서 벗어나 버렸다. 본인의 의지를 요구할 때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고향 집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친구와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탔다. 새벽 영등포역은 추웠다. 고향에서 입고 온 얇은 점퍼는 서울에 주눅 든 시골 소년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부지런히 흩어져 가고, 그런 사람들 속을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는데 친구는 여유로웠다.
“촌놈 쫄기는…”
얼굴을 하얀 분으로 떡칠한 여자가 다가왔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될 것 같은 나이였다. 친구와 뭐라고 주고받는 말이 간간이 들렸다.
“뭐가 그리 비싸”
“잠만 잘게”
“…”
말이 끝났는지 친구가 뒤돌아 보며 부른다.
“야, 가자.”
“?”
“뭐해 임마, 얼른 따라와.”
친구를 놓칠까 봐 본능적으로 가방을 들고 쫓아갔다. 역전 근방 싸구려 여인숙이었다. 그 방의 전등이 왜 붉었는지, 방이 손바닥만큼 작았는지, 왜 신발을 방에 들여 놓아야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방에 들어간 친구는 익숙하게 드러누워 곧 잠이 들었으나, 기수는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가방에서 손을 떼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