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신발 공장
서울은 기수를 그렇게 맞이했다. 다음날 친구는 떠났다. 남겨진 기수가 어떻게 구로공단까지 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기웃거리며 걸었던 것 같다. 공원모집, 000명, 숙식제공. 무조건 찾아갔다. 어마어마하게 큰 신발 공장이었다. 플라타너스 잎이 조금씩 물들어가는 경비실 앞에 다양한 나이들의 사람들이 있었다. 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아있는 사람. 어쩌면 그렇게 말씨도 다양한지. 두려움과 호기심이 모두 작동했다. 노동자티가 역력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보일까봐 조금 떨어져 먼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니 공장 안에서 중년 남자가 나와 손짓을 한다. 사람을 손으로 불렀다. 아무도 화를 않내는 것이 신기했다. 모두 그 남자 뒤를 따라 공장으로 들어섰다. 시멘트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선 건물은 내부가 끝없이 넓었다. 시골 학교 교실보다 백 배는 커 보였다. 군데군데 까만 고무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고무만큼 까만 얼굴을 한 작업자들이 바삐 움직이느라 아무도 들어선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중년의 남자는 몇 사람씩 떨궈놓고 가버렸다. 기수도 푸른색 작업복 사나이에게 인계되었다. 푸른색 작업복은 강파르게 마른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힐끗 쳐다보는 눈길이 불량스러웠다. 그는 눈짓, 턱짓으로 일할 곳을 배치해 주었다. 일에 대한 설명과 안내는 없었으나 모두 능숙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숙련이 필요 없는 단순 노동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공돌이(공원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다.)들은 순식간에 공장의 한 부품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