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9.오목교

by 재학

어디에서 그런 눈치가 생겼을까. 기수도 어느 사이엔가 고무 덩어리를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 시작과 동시에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여기 오는 것이 아니었어. 오는 길에 보이던 다리(오목교이라고 써 있었던 것 같다.) 아래에서 자더라도 여기는 아니야.’

푸른 작업복의 시선을 피해 바라본 공장 안은 개미처럼 많은 공돌이들이 무표정하게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8.15 광복절이면 면사무소 지붕 위에서 울던 소리가 공장에서 들렸다. 신기했다. 작업 종료를 이렇게 알리나 보다. 기계가 멈추고 기계에 달라 붙어 빗자루질을 했다. 기수 손에도 빗자루가 들려 있다. 어디에 있는 것을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기계와 바닥을 쓸고 닦는 모습이 인간기계 같았다. 모든 것이 기계처럼 돌아갔다. 청소를 끝낸 사람들은 수돗가에 달라붙어 고무만큼 까만 비누로 부지런히 씻었다. 콧구멍과 귓바퀴에 달라붙은 까만 고무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기수도 그들을 따라 씻고 있는데 푸른 작업복이 불렀다. 표정만큼이나 불량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따 기숙사 뒤로 나와.”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렴풋이 들었던, 불량스런 일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신고식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 그렇게 해서 똘마니라 부르는 추종자를 다스리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만들어 가는 것, 오늘 기수가 그 희생의 제물로 선택되었나 보다. 잠시의 혼동을 추스르고 기수에게 떠오른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 저 작업복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가장 사악한 인간이다. 저런 사람을 이길 자신은 없다. 도망가야 한다. 기수는 수돗가에서 씻는 척하다 공장 정문을 향하여 달렸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는 기수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공장을 벗어났는지 기억에 없다. 푸른 작업복이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뒤돌아보면 목덜미를 잡아당길 것 같아 돌아볼 수 없었다. 정신없이 걸었다. 그 와중에 오른손에는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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