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봉천동
신발 공장을 나온 뒤로 어떻게 봉천동 학습지 사무실까지 가게 되었는지 말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어렵게 연락이 된 초등학교 친구 자취방에서 같은 처지의 서너 명이 몇 밤인가를 보내고, 또 다른 친구를 찾아가고 했던 쓰디쓴 기억의 단편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학습지 배달 일이 기수에게 가장 쉽게 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일공부라 부르는 학습지를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학생이 있는 집에 배달해 주는 것이었다. 배달한 학습지는 2~3일에 회수하여 채점을 해서 새로운 학습지와 함께 다시 가져다주면 되었다. 단순한 일이었다. 중학교 졸업 학력에 어울리는 일이다. 학습지 일도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찾았던 것 같다.
2호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동네를 열심히 배달했다. 학습지 사무실은 상도동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있었다. 3층 건물 계단에 불이 들어오는 전등이 하나도 없었다. 상자가 계단을 막고 있는 1층 봉제 공장을 지나면 곧바로 2층 내부가 보였다. 2층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어 내부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주작명, 점, 관상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있고, 제단에 화려한 불상이 입구를 바라 보고 있었다. 무서움과 신기함이 교차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어 오르내릴 때마다 힐끗거리며 쳐다보고는 했었다. 들여다볼 때마다 불상 앞에 우리 사장이 앉아있으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얼굴이 뽀얀 중년 남자가 화려한 방석에 앉아 빙긋이 웃으며 쳐다봤다. 사무실에는 사장과 왜 나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장 남동생, 그리고 배달하는 셋 해서 다섯 명이 있었다. 먼저 들어온 친구들은 언제부터 그 일을 했는지, 친해진 뒤로도 그 말은 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지만, 학습지 일이 능숙했다. 나이가 같아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학습지를 받아 챙겨 나란히 사무실을 나서 배달을 끝내고 구독을 개척해야 했다. 각자 구역을 정해 영업을 했다. 처음에 두 친구를 따라 다니며 영업 방법을 배웠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학습지를 권하는 것이 영업의 시작이다. 기수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두 친구는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들어간 집에서 영업을 성공했으나 기수는 번번히 실패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학생이 있는 것을 알고, 또 어떻게 말을 그렇게 잘하는지. 두 친구는 영업비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만 봐도 초등학생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일인데. 물론 기수도 열심히 영업을 했다. 사람 소리만 나도 들어가 학습지 보세요라고 했다. 결과는 성공률 10%도 안되었다. 대부분
“학생 없어요.”
“안봐요.”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