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배달
며칠째 단 한 건의 학습지도 개척하지 못하고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기분이 비참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돌아와 사장과 사장 동생의 눈치를 보며 라면 한 그릇 얻어먹고 또 거리로 나섰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부재로 인한 불안과 고립감이 되살아났다. 기수의 영업 성공률이 낮았던 이유는 기수의 소극적인 성격과 입을 닫게 만드는 사투리였을 것이다. 사투리가 튀어 나올까봐 입을 닫으면 닫을수록 더더욱 말 없는 영업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었다. 두 친구가 개척한 학습지를 배달만 하면 안되나 싶기도 했는데 그러면 사장에게 이익이 가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애매하게 웃는 사장이 친구에게 그랬단다.
“재는 버는 게 없어.”
배달보다 개척이 많아야 했다. 능력이 좋은 두 친구는 학습지 개척을 노는 시간으로 여겼다. 오전에 부지런히 배달 끝내고 영업해야 한다고 우기는 기수를 남겨 놓고 사라져버렸다. 혼자 남은 기수는 열심히 돌아다녔다. 성실한 기수 아닌가. 대문 안에 사람 소리가 나면 조심히
“학습지 하나 보세요.”
라고 소리를 냈다. 어쩌다
“학생~ 학습지 하나 줘.”
라고 부르는 소리에 반갑고 기뻐서 배달할 주소를 받아 적는 손이 떨리던 경험은 한 달에 두 번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사장은 기수에게 교통비(가운데 구멍이 뚫린 작은 동전)로 토큰 두 개 외에는 주지 않았다. 사실 토큰 두 개도 고마웠다. 학습지 사무실을 가려면 화곡동에서 봉천동까지 버스를 두 번 바꿔 타야 했다. 하루에 토큰 네 개가 필요하다. 토큰 네 개는 큰돈이다. 노량진까지 버스를 타고, 거기부터 봉천동 고개를 넘어 사무실까지 걸어 다녔다. 그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반가워하지도 않는 사무실을 열심히 나갔다.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궁박한 시간이었다. 쓰리고 아픈 그 시절이 나중에 삶의 자산이 되었음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