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 없어

7. 바쁠 것 없어

by 재학

‘바쁠 것 없어.’

평일 낮 11시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끝 차선으로 달렸다. 속력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 전 카센터에서 들은 말도 있고 해서, 계기판 바늘이 80을 넘지 않기로 했다. 곡성 창고까지는 250㎞ 거리다. 개었다 흐렸다 하는 날씨 속에 창순이 좋아하는 엔진 소리만 고요(?) 하다. 이럴 때면 상념에 빠져든다. 이제 몇 년 후면 퇴직이다.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야산을 살 거야. 계곡을 막아 위에는 가족들 물놀이 시설을 만들고 그 아래 웅덩이에는 오리가 둥둥 떠다니게 하는 거야. 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쳐 닭과 염소 몇 마리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풀을 뜯고, 털이 예쁘고 눈이 선한 레트리버도 두 마리 키우자, 사과나무 대여섯 그루, 배와 복숭아도 그만큼...’

아무리 빠져들어도 싫지 않은 상념이다.


모든 차가 창순의 에스엠을 추월해 갔다.

그럴 수밖에. 창순은 상념에 빠져 있고, 속도계는 80에 고정되어 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지 1시간이 지났다.

잠깐 고민이 생겨나는 구간이다. 직진하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천안 논산 간 민자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고민할 일이 없었다. 직진만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고민의 구간이다. 민자도로는 통행료가 비싸다. 통행료와 연료비 어느 것이 더 많을까?

‘바쁠 것 없어.’

창순은 길지 않은 고민을 끝냈다. 직진하자. 오늘 바쁠 일 없다.


‘이 구간은 오랜만에 들어서는군.’

도로가 한산하다.

트레일러와 화물차가 대부분이다.

느릿느릿 곡선을 돌아간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 군.’

중학교 때 수학여행 가면서 들렀던 휴게소, 촌놈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 그래서 깊이 각인된 휴게소, 여산휴게소가 다가온다. 꼭 들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주는 휴게소다. 도로변 자귀나무가 무성하다. 갖고 싶은 농장에 꼭 심고픈, 밤에는 한 잎이 다른 잎을 덮어 준다 해서 부부 나무라 부르는. 연분홍 꽃도 이채롭다.


점심때가 되었다.

‘뭘 좀 먹을까?’

혼자 앉아 먹기는 내키지 않는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의무감이 작동한다. 휴게소에 들어섰다. 역시 한가하다. 이런 한가함이 주는 기분 좋음이 얼마나 좋은지.

그늘을 찾아 주차했다.

‘에스엠을 그동안 아무 데나 세웠어.’

차에서 내리니 요란한 음악이 한가로운 풍경을 깬다. 영 어울리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잠시 고민을 했다.

‘식당을 들어갈까? 가판대 음식을 맛볼까? 음~ 간단히 때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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