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고요
‘나쁜 사람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횃불 행렬을 따라잡았다. 창순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른 것 같다. 횃불을 향하여 돌진했다. 몇 개인가의 횃불이 불꽃을 피우며 허공으로 날랐다. 예상치 못한 공격은 예상보다 큰 효과를 준다. 죽창들은 공터에서의 광폭함이 어디로 갔는지 도망치느라 바빴다. 완장을 믿고 설쳤나 보다. 곤경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는 용기가 없다. 오합지졸이다. 나뒹구는 동료를 팽개치고 도망가기 바빴다. 창순은 묶여 있는 이들의 줄을 끊었다.
‘어서 빨리 도망가시오.’
체념과 공포로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 사람들이 쉽사리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한 사람의 앞선 행동이 필요하다. 그중 한 젊은이가 마을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던 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어느 순간 창순 혼자 남았다.
무서우리만큼 고요하다. 두려움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허물어지려는 다리를 추스르며 창순도 마을을 향하여 달렸다. 어떻게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공터는 텅 비어 있었다. 공터를 지나 마을 어귀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숨이 차다 더 이상 발을 내디딜 수가 없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횃불의 일렁임이 등 뒤에서 춤추는 것 같다. 날카로운 죽창의 감각이 등을 꿰뚫을 것 같다. 돌아서 막아야 한다. 낫이며 몽둥이가 횃불과 함께 춤춘다. 일그러진 눈빛이 창순의 가슴을 향하여 달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