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 없어

18. 당산나무

by 재학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손과 발이 묶였다. 도망가야 한다. 마음뿐이다. 어어 하는 소리만 나온다. 움직일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조용하다. 아프지 않다. 살아 있다.’


주위를 둘러봤다.

아침 햇살이 떠오르고 있다. 햇살의 따스함이 주변을 덥히며 퍼져 나갔다. 창순은 잘 손질된 무덤 사이에 누워 떠오르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초가와 담벼락, 정자는 어디로 갔을까? 언덕 아래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허물어진 돌담이 당산나무 너머로 덩굴 속에 보인다. 에스엠이 당산나무 아래 개울가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한 바퀴만 더 굴렀어도 개울에 처박힐 뻔한 자세로.


당산나무 아래 자동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돌 표지석이 서 있다.

‘기억 마을 불당리’

‘서봉산 아래 자리 잡은 불당리 마을은…

민족상잔 아픔의 현장으로… 낮으론…

밤에는…

서로가 서로를…

그 아픔을 새겨 마을이 있던…’


비바람과 세월에 마모된 글씨가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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