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2. 매뉴얼 인간

by 재학

‘나한테만 그런 것 아니었네? 상습이구먼’

분노가 사라지고 다시 라디오 소리가 들어온다.

방송이 8시 넘으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음악도 시큰둥하다. 여기서부터 회사까지 15분. 조용히 가자. 라디오를 끈다.


2차선 도로 내리막 앞에 달려가는 차들이 보인다.

대부분 고개를 넘은 순서다. 유난히 1.2차선을 왔다 갔다 하는 차가 있다. 이 길을 다닌 2년 동안, 저렇게 달려도 대부분 회사 앞 삼거리에서 만난다. 삼거리 정체만 한 번 더 이겨내면 회사다. 신호 두 번은 받아야 한다. 오늘도 그럴 것 같다.


앞 트럭이 미처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스마트폰 만지작거리고 룸미러로 얼굴도 살펴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데 옆 차선 뒤에 그 번호가 있다. 내리막에서 칼치기했는데 나보다 뒤에 있어? 역시 한심한 놈이군.

‘? 혹시 우리 회사 아냐?’

이미 그 차도 나의 존재를 의식함이 역력하다. 차가 느낀다. 여기서 회사까지 5분, 천천히 가자. 주차장에서 만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신호가 바뀌고 트럭 덕분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고맙다. 그 번호? 진즉 사라졌다. 역시나 굉음을 내면서.


마지막 구간이다.

유턴 받아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그 번호가 유턴 구간에 서 있다. 확실해졌다. 이제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유턴, 그 번호가 주차장에 올라선다. 차던 봉이 올라간다. 주차라인에 나란히 대고 서로 누가 먼저 내릴 것을 계산했냐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주차하고 마스크 쓰고, 가방 챙기고 옷 손에 걸치고 내렸다. 그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다. 자기가 한 행동을 알고 있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의 별명은 매뉴얼이다.

임 매뉴얼.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상무님도 그의 매뉴얼엔 꼼짝 못 한다. 그는 60km 구간은 60km로 달려야 한다. 녹색 신호를 무시하려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신호 다섯 번 이하로 넣고 추월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사무실에서 그는 임 매뉴얼이었다.


그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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