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15.그레이 하운드

by 재학

기수가 고향을 떠날 무렵 동네 앞으로 중앙분리대가 없는 2차선 고속도로가 막 개통됐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까맣게 포장된 길을 그레이하운드라는 이름의 고속버스가 달렸다. 옆구리에 다리와 꼬리가 길다란 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다리꼴 창문으로 승객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멀어져 가는 버스를 언제까지나 바라보았다. 고속버스를 탄단다. 창문이 사다리꼴이 아니어서 아쉬웠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예쁜 유니폼을 입은 안내양 누나는 어쩌면 그렇게 친절한지.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고,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드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버스를 추월해 가는 승용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환상적인 자동차 여행은 순식간에 끝났다.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것 밖에. 고창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왜 고창이었을까. 사장 고향? 춘호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무 버스나 타서 이렇게 되었을까? 서울보다 더 낯선 고장을 왔다. 버스가 터미널에 진입하고 잠에서 깬 춘호가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며 일어 설 때 내려야 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적했다. 버스 두어 대 서 있고, 타고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기수네를 내려준 버스는 터미널을 빠져 사라졌다. 셋은 정류장을 벗어나 변두리를 향하여 걸었다. 춘호가 앞장섰다. 읍내 어귀까지 왔다. 5일장 골목 분위기가 물씬 났다. 몇 번인가 두리번거리더니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과 말을 주고 받더니 기수하고 대근이를 향하여 손짓했다. 주막인데 숙박도 한다고 했다. 술꾼은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 옆에 먹글씨로 여인숙이라고 써 있었다. 맨 끝 방을 가리켰다. 지금 생각해 봐도 춘호는 대단한 친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이니까 열 일곱 살. 그 나이에 어른들과 능숙하게 협상을 하고, 친구들을 이끌어 갔다. 주눅 든 얼굴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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