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고창
단 며칠 만에 학습지 개척도,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머무는 여인숙에는 3대가 살고 있었다. 육십 중반의 주인과 키가 작고 몸이 통통한 서른 갓 넘은 아들, 그리고 막 걸음을 뗀 손자가 살았다. 아들은 백수였다. 하루 종일 강둑에 앉아 낚시만 했다. 아침 먹고 낚싯대와 어항을 챙기면 부인이 고추장, 된장을 담은 그릇과 작은 냄비, 그리고 막걸리 한 주전자를 공손히 넘겨 주었다. 기수네가 학습지 영업을 하러 나갈 때 주막집 아들은 낚싯대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습지 가방은 기수 혼자 차지가 되었다. 춘호와 대근이는 주막집 아들과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지방 학습지 개척이 기수 혼자 일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수네 지방 학습지 영업은 실패였다. 춘호의 능력으로 몇 건의 배달카드를 작성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서울로 부치지 않은 것 같다. 기수와 대근이는 한 건의 카드도 만들지 못했다.
기수가 하루 종일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다 오면 두 친구는 막걸리 주전자를 가운데 두고 평상에 앉아있었다. 기수에게 미안한 감정을 보였냐고? 전혀 그러지 않았다. 기수도 굳이 그런 것을 바라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현실이 불만을 앞섰고, 불만이라는 감정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기수도 더 이상 학습지 가방을 매지 않았다. 함께 강둑에 있었다. 뒤돌아보면 즐겁게 놀았던 기억 중의 한 부분이 그 강둑이다. 된장을 듬뿍 넣은 어항을 모래밭에 뭍어 두고 하류에서 물장구로 시간을 보냈다. 햇볕에 등이 따갑도록 놀고 나서 어항을 들어 올리면 은빛 비늘을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맛있는 매운탕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입에 착 붙는 매운탕에 호기롭게 막걸리를 들이켰다. 열일곱 살이 막걸리를 얼마나 마실 수 있을까. 춘호는 잘 마셨다. 대근이와 기수는 강둑에 대자로 뻗어 오후 시간을 다 보냈었다. 기수의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기수에게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