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19.괴산

by 재학

가야 할 곳이 없었다. 셋은 자연스러운 합의로 서울행을 택하지 않았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과 떠나는 자동차를 바라보다 춘호가 일어섰다. 우리 집으로 가자. 리더인 춘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생각이 깊은 친구다. 만약 여기서 각자 헤어지자라고 했더라면, 기수 너는 알아서 가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춘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버스를 갈아타고, 낯선 터미널에서 서성거리기를 반복하다 종점에 도착하면 또 다른 종점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허기 속에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터미널 주변을 서성이던 시간들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지나가는 행인의 뒤를 쫓다 되돌리기를 반복했다. 배고픔과 즐거움 없는 여행은 졸음만 몰고 왔다. 버스 속에서 내내 졸았던 기억뿐이다. 창문에 머리를 찧으면서 졸고 있는데 춘호가 어깨를 쳤다. 내려야 한단다. 버스는 산속으로 난 좁은 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왜 산에서 내려?”

“잔말 말고 빨리 내려.”

춘호가 거친 말로 뱉으며 제촉했다. 말투가 이상해졌다.

종점이 아니었다. 비포장 도롯가 느티나무 옆에 내렸다. 괴산이라고 했다. 완벽한 산골이었다. 뾰족한 산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사이 작은 길로 버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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