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20.가족

by 재학

버스가 떠나고, 정신이 돌아오고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산뿐이었다. (해가 빨리 사라지는 산골이어서 어둠도 빨리 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춘호 동네란다.

“동네가 어디 있는데?”

춘호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서 몇 개인가 하얀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저게 동네라고?…”

춘호 표정이 무서워 소리 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고향을 찾은 춘호 얼굴에는 반가운 표정이 전혀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버스가 떠나고도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춘호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괜히 찻길 아래 둑으로 내려가 풀숲을 헤치기도 하고, 계곡 얕은 물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 만들기를 하면서 집으로(차마 마을이라고 부르지 못하겠다.) 서둘러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친구네, 집에 왔으면 얼른 달려 가야지 왜 머뭇거리고 있는 거야.’

그렇게 도로변에서 한참을 보냈다. 주위는 더 이상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두워졌다. 깜박이는 불빛이 나타나자 그제서야 마을을 향하여 걸음을 떼었다. 작은 몇 채의 집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침침한 불빛이 주변을 더 어둡게 만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키보다 낮은 돌담이 있고 반쯤 쓰러진 닫히지 않은 사립문을 들어선 마당은 정말 작았다. 마당에 어울리게 작고 낮은 지붕 아래 정말 작은 마루에 몇 사람인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머리 위에 꼬마전구 하나가 힘겹게 빛을 내고 있었다. 들어서는 그들을 잠깐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숙여 먹는 것을 계속했다. 누구 하나 말을 하거나 일어서지 않았다. 낯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문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춘호와 아들 친구들에게 가족들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어둠이 눈에 익자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 한 사람, 부부로 보이는 30 중반과 열살 안되었을 아이 둘이 보였다. 춘호는 익숙한 분위기인지 예상한 것인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히려 대근이와 기수가 안절부절못하고 들어서지도, 사립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춘호도 무안했는지 누구도 앉으란 소리를 하지 않는 마루 끝트머리로 친구들을 불렀다. 그제야 며느리인듯한 사람이 일어섰다. 작고 다부지게 생겼다. 며느리가 일어서는 데 노인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며느리가 맞받아치는 소리가 나왔다. 노인은 무언가 또다시 중얼거리는 소리로 말을 했고, 며느리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대꾸를 했다. 말대꾸가 아니었다. 쥐어박는 말이라고 하나? 그렇게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다투는 내내 춘호 형은 말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기수에게는 상상도 못한 상황이었다.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춘호가 이성을 잃고 형수에게 덤벼드는 것은 아닐까? 아무렇게 뱉어도 자연스러운 욕을 해 대며.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차게 생긴 형수가 이 집의 실권자임을 증명했다. 그날 밤 가족 누구도 그들과 눈을 맞추지 않았으며, 기수는 오히려 그것이 더 다행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사실 눈을 맞췄더라면 어떤 표정이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지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외양간에 붙어 있는, 몇 장인가의 멍석이 윗목에 동그랗게 말아진 방에서 춘호 아버지와 함께 네 명이 다닥다닥 붙어 잤다는 것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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