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담배 농사
이 지방은 기수가 자란 남녘과 달랐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산뿐이었다. 나무껍질을 이어 붙인, 지붕이 낮은 집이 산비탈 밭두렁 가장자리에 두어 채 엎드려 있고, 산모퉁이를 돌아도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어느 산자락이나 비슷한 모습이다. 지붕만큼 낮은 굴뚝에서는 한낮에도 실날 같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어쩌다 보이는 논은 손바닥만 했다. 기수네 마을도 남녘치고는 산이 많은 농촌이었으나 열 마지기 농사를 한다면 먹고 살만하다 했고, 서른 마지기는 중농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몇 마을 논을 다 모아도 열 마지기가 안 될 것 같다. 그것도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담배 농사가 대부분이었다. 담배 수확철인가 보다. 사람들이 담뱃잎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막대기도 거든다는 농사철에 기수와 친구들은 한가롭기 그지없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담배 수확에 바쁜 사람들에게 학습지가 어떻고 하는 말이 먹힐리 없다. 빙그레 웃어 주면 선한 사람이었다. 매서운 눈초리로 쫓아 내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지긋이 쳐다봤다. 아이 키만큼 길다란 담뱃잎을 진 지게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잎만 출렁거리며 갔다. 잎자루에서 하얀 진이 뚝뚝 떨어졌다. 담배 진이 배여 옻처럼 윤을 내는 삼베옷 차림의 농사꾼이 담뱃잎에 파묻혀 지게가 절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짐을 지고 갔다. 셋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걸음을 옮기다를 반복했다.
터벅거리며 산길을 걷다가 길가를 따라 흐르는 개울가에 달려 있는 산딸기도 따 먹으며 그렇게 돌아다녔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엔진음이다. 반가웠다. 뒤돌아보니 순경이 오토바이를 타고 기수와 친구들을 향하여 천천히 다가왔다. 멀찍이 떨어져 엔진을 켜 둔 채 손짓으로 불렀다. 춘호가 다가갔다. 역시 대장이다. 동네 이름도 들리고 춘호 형인 듯싶은, 이름도 들린다. 순경이 저 만치 떨어져 있는 기수와 대근이를 훑어보고 오토바이를 돌려 내려갔다. 춘호가 그런다. 낯선 학생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고 신고가 들어 왔단다. 소리 없이 웃는 춘호의 웃음 속에 공허가 가득했다. 괜히 돌부리를 차며 또 하나의 산모퉁이를 돌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갔다.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큰 마을이 나타났다. 크다고 하지만 다른 곳보다 몇 집 많았다. 어쩌면 저리도 다닥다닥 붙어 있을까? 옆집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지붕들이 맞대어 있다. 그중 한 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당 가득 담뱃잎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것을 볏짚으로 엮느라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