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27.화전민

by 재학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화전 밭이 나타났다. 붉은 황토 흙이 완만하게 펼쳐지고, 가장자리에 낮은 돌로 경계를 만들었다. 집이 보였다. 너와를 얹은 지붕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춘호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출입문이고 뭐고 없다. 낮은 돌무더기 담이 이어지다 끊어지고, 흙이 반질반질 다져진 곳이 집을 드나드는 문인가 보다. 익지 않은 보리수나무 아래 몇 사람이 햇빛을 피하고 있다. 들어서는 그들을 경계라고는 하나 없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지나가는 바람만큼도 관심이 없다. 어린아이도 있다. 춘호가 학습지를 흔들며 아버지일 듯싶은 중년의 남자에게 영업을 시작했다. 어쩌면 저렇게 말이 술술 나오는지. 때와 장소에 어울리게 말이 나오는 춘호의 입은 신기하다. 그런 춘호의 말에 집주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춘호는 입으로 학습지를 말하면서 눈으로는 부엌과 마루 언저리를 부지런히 훑었다. 학습지 개척이 아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더 이상 달랠 수 없다. 감자 한 개라도 고맙겠다.

‘배고파 죽겠어요.’

표정이 절절했다. 춘호의 절규를 뒤로 하고 기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갔다. 집 뒤를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에 정신이 팔려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반반한 바위 위에 두세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두세 명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었을까?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아니 나이를 생각하지 못했다. 두세 명의 아이 중 한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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