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33.아시안 게임. 88올림픽

by 재학

사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행동이 컬러텔레비전으로 쏟아졌다. 아시안 게임에 이어 올림픽의 열기가 온 나라를 달궜다. 근무처의 부유한 관리자 중 한 사람은 스텔라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 사회가 돌아가는 소리는 TV 속에만 있었다. 산속 사택까지 들리지 않았다. 정년이 가까운 선배와 방 하나씩 사용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봉고차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차를 타고 떠나고 사무실 불이 꺼지면 선배와 둘이 산을 넘었다. 산 너머에 막걸리집이 있다. 2차 3차까지 마치면 새벽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 봉고차 소리가 들리면 부스스한 얼굴로 사택 문을 열고 나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허우적거리며 달려온 다리가 휴식을 필요로 했을까. 다시 일어서 달리기 위한 시긴이 필요했을까? 3년을 천정 위 고양이, 막걸리와 보냈다. 흙벽돌 사택이 지겨워졌다. 사실 더 머물 수도 없었다. 신입사원이 산속 근무를 3년 이상 한 예가 없단다. 수원으로 올라왔다. 대출을 잔뜩 앉고 11평 주공 아파트를 샀다. 굴러가는 바퀴에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타기 힘들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떨어지면 안된다. 온 몸이 찢기고 부서져도 버텨 남아야 한다. 아파트를 사기 위하여 있는 대로 돈을 끌어 모았다.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못살 것 같았다.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은행 돈도 빌리면 내 돈이 된단다. 보증인 두 사람이 필요했다. 사무실 동료에게 술 사주고 밥 사주며 부탁했다. 보증을 서 준단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말리는 보증을. 고마웠다. 은행 문 앞에서 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마누라가 알면 큰일 난다고 돌아섰다. 삶은 고단했다. 수 많은 담배 연기와 불면의 밤이 지나고, 액수를 낮춰 대출이 나왔다. 월급의 2/3가 대출 갚는 것으로 들어갔다. 꿀 같은 신혼이라고? 돈 없는 신혼은 꿀맛이 아니다. 신혼집 앞의 넓은 논이 사라지고 논보다 넓은 지붕을 한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분양가보다 세 배가 넘은 돈을 받고 파는 것을 보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서둘렀나 보다. 미등기 전매로 수 많은 사람들이 사고 판 아파트였다. 집을 사고 3개월 정도 좋았다. 시골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우리 기수가 수원에 아파트를 샀다고 동네 자랑을 하셔서 시샘과 부러움이 가득했단다.

“벌써? 몇 평짜리인데?”

“몰라 큰 거래.”

“술 한 잔 내.”

“내고말고.”

마을 회관에 막걸리 두 통을 냈단다.

어느 날 인가 아파트 단지에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다.

‘주공은 책임져라.’

‘실수요자에게 책임전가 왠 말이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미등기 아파트를 정리한다고 했다. 먼 훗날, 학을 떼고 팔고 나온 후, 5층 주공아파트가 20층 단지로 바뀌고 나서 알게 된(짐작이다.) 사실이지만, 오래된 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하기 위하여 몇 푼의 이익을 남기고자 발버둥 치는 서민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게 만들지 않았을까. 중간에 이득 본 사람들은 고스란히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그런 거대한 계획이 가동되지 않았을까?

인생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