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34.꿈

by 재학

큰아이 세 살, 얼마나 예쁠 때인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좋은 시간에 퇴근하고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조건 찾아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도서관 출입증이 필요합니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노교수는 아무 말 없이 종이 한 장을 내 밀었다.

‘도서관 출입증 신청서’

합격의 자신보다는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해 보고 싶은 것을 해 봤잖아 하는 것 말이다. 다시 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서른이 넘어, 가정이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체력과 시간 모든 것이 불리했다. 쏟아지는 졸음과 업무 생각에 집중이 어려웠다. 생과 사처럼 1시간을 꾸벅거리고 나면 어느새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이번에는 짧게 끝났다. 1년, 그렇게 기수의 꿈은 흘러갔다. 홀가분했다. 편했다. 집에 와 아이와 노는 즐거움도, 퇴근 후 한 잔의 즐거움도 좋았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 둘째가 태어나고, 자동차가 생기고, 근무처를 두 번 옮기니 30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직업 오래 하려면 승진해야 해.”

“나이 먹고 붙어 있으면 욕먹는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의 충고를 흘려들었다. 지금은 즐거운 시간이다. 내 인생에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있었던가. 문득문득 흘려보낸 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때 그 길을 갔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시절이 그리웠다. 현실에 불만이 있었냐고? 그렇지 않다. 휴일이면 가족과 맛집 찾아다니고, 때때로 쇼핑하고, 계절에 맞춰 설악산으로 민속촌으로 자연농원으로 아낌없이 돌아다녔다. 하루를 마감하고 저녁 노을 너머 먼 산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바라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련한 꿈이 문득문득 그리웠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이제는 늦었다는 절망감을 떨쳐내고는 했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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