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33세
말만 들어도 마음을 흔드는 말이 있다.
강정동이 그렇다.
특히 우리 형제들에게는.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으면,
우성이도, 우성엄마도 애착을 느낀다나?
칠봉리에서 강정둥이라고 하면 우리 집을 지칭했으니 그럴 만하다.
비록 동네 중심은 아니었지만,
형제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
학교를 다니고,
꼴망태 가득 소풀을 베어 오르던 곳
집 뒤 대나무밭에서 죽순으로 아침 반찬을 만들고,
멀리 동악산으로 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강정둥.
아침 먹고 우성이 손잡고 강정둥을 갔다.
아직도 대나무는 울창하다.
가는 대 몇 개 베어와 우성이랑 활을 만들었다.
아빠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하면서.
마당의 닭을 맞춘다고 오후 내 쫓아다닌다.
밤에 할머니 심심하다고 꼭 함께 잔다.
기특하게도.
1995. 2. 1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