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41.의지

by 재학

소년과 소녀는 마을을 떠났다. 소녀가 앞장섰다. 소녀는 주변 지리를 잘 알았다. 평소에 아버지를 따라 넘나들던 고개를 넘기로 했다. 소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안된다. 머리가 노란 소년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둘은 낮에는 산에 숨고 밤으로 길을 걸었다. 소녀가 알고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언젠가 아버지는 소녀를 그곳까지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산을 가자고 했을까?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 들면 편안함을 느낀다.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산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소녀를 데리고 그 산을 올랐다. 그리고 마당바위에 앉아 말없이 발 아래 상수리 숲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그 장소에 소녀를 데리고 간 것은 예지적인 일이었을까. 소녀는 마을을 벗어 나면서 가야 하는 곳이 그곳밖에 없음을 알았다.

소녀는 두려움에 떠는 소년을 제촉하여 계곡을 건넜다. 사람의 눈에 띄면 안된다. 가파른 곳을 선택하여 올랐다.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때와 달랐다. 아버지를 따라 오를 때에는 힘들었다. 지금은 다르다. 앞장 설 때와 뒤따를 때가 다르나 보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소년을 끌어야 한다.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뒤따르는 소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녀를 따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소녀가 되돌아 손가락을 가리킨다. 올라왔던 곳이 내려 보인다. 한눈에 들어왔다. 고요함이 가득하다. 먼 산 아래 작은 불빛이 보인다. 마을이나 절이 있나 보다. 잠시 두려움과 불안이 잊혀진다. 그렇게 소녀와 소년의 동굴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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