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흔적

42.산속 생활

by 재학

낮에는 동굴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나뭇잎을 채운 동굴은 따스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서로의 손을 끌어 당겼다. 붉은 노을이 잠시 머물다 온 산이 깜깜해지면 마당바위로 기어 나왔다. 별과 달빛에게만 노출시켰다. 가끔씩 절벽 난간을 건너 정상까지 갔다오기도 했다. 손에 잡힐 듯, 쏟아질 듯 가까운 별무리를 헤아리며 밤을 지새다 동쪽 산 너머가 희부옇게 밝아 오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갔다.

산에 들어오고 계절이 바뀌어 갔다. 멀리 들판과 잎 넓은 나뭇잎이 누렇게 변해 갔다. 그 동안 소녀는 몇 번인가 마을을 다녀왔다. 식량이 문제였다. 남아 있는 곡식을 거두어 머리에 이고 날랐다. 처음 몇 번은 소년도 따라 가겠다고 했다. 소녀는 소년의 두 손을 꼭 감싸 쥐고 걱정하지 말라고, 곧 돌아온다고 말했다. 언제나 곧 돌아왔다. 그렇게 몇 번인가 마을을 갔다 오고, 더 이상 먹을 거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식량을 구해야 할 범위가 넓어져 갔다. 사람 손길이 멀어진 밭은 산짐승의 먹이터가 되었다. 짓밟히고 흩뜨러진 곡식을 긁어모았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에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손끝에서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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